(토마토칼럼) 호랑이 기개처럼 새로운 전환을

입력 : 2022-01-07 오전 6:00:00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경제 파탄의 늪에서 탈출시킨 장본인이 있다. 시장경제로의 산업육성정책을 펼친 옛 서독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국민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독일인인 그의 경제정책 성공전략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린다. 
 
하지만 더 놀라운 기적이다.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남북전쟁으로 넝마가 된 대한민국이 일궈낸 고도성장, ‘한강의 기적’이다. 한강의 기적에는 독일과 같은 마샬 플랜급 원조도 없었으니 전 세계가 놀랄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적’이다.
 
1945년 해방 당시 45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 이어 1인당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됐으니 개발도상국들의 ‘신화’로 통할 정도다.
 
격동하는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개도국의 모범으로 불리던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서의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임인년,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온다는 ‘호랑이의 해’. 경제계 인사들과 새해 덕담을 주고받고 있지만 사실 속내는 편치 않다.
 
‘빠른 추격자’의 전략을 통한 한강의 기적을 일궜으나 기술혁신의 선점이라는 독식 앞에 더는 추격자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년사를 통해 ‘선도국가 시대’를 운운한 문재인 대통령이 “‘빠른 추격자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피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탄소시대 전환으로 인한 주요국의 환경규제 강화와 슈퍼바이러스 변이의 변이 창궐, 원자재 수급 불안 확대, 공급망 디커플링 조짐 등 위기 속 난제는 또 한 번 시련의 역사를 쓰고 있다.
 
원자재 수급 차질과 가격상승의 잠재적 위기가 올해부터 더욱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숨 돌린 요소수 대란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이가 많다. 
 
중국이 탄소중립을 본격화할 경우 이차전지 등 핵심소재의 수요증가로 인한 희토류 등 광물 통제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예측을 보면, 18년 후에는 현재보다 6배 많은 광물을 소비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와 국무부 등의 관련 기관들이 광물 공급망에 주력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충격파는 결국 우리 수출 전선에도 걸림돌이다.
 
66년 무역 역사상 최대치를 달성한 금자탑도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수출 쾌거에도 20개월만에 적자를 기록한 지난달 무역수지를 보면, 샴페인을 따기가 쉽지 않다. 
 
세계 각국의 '위드 코로나' 기조로 교역 활성화의 맛을 봤지만, 12월 수입액도 37.4%나 급증했다. 지난해 12월 수출은 607억4000만 달러, 수입은 613억2000만 달러였다. 원유·가스 등 에너지 관련 수입액이 폭증한 탓이다. 주된 원인이 원자재 수입이라는 얘기다. 
 
올해는 인건비 상승, 수출 대상국의 경제 상황 악화, 미·중 갈등, 높은 수출 실적에 따른 역기저효과 등 우려심도 팽배하다.
 
일부 경제 석학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을 외발자전거에 빗대곤 한다. 경제의 고질병인 외발자전거형 경제 체질은 때론 자랑스럽기도 늘 위태롭기도 하다. 특히 경제 양극화의 심화가 그런 단면을 보인다.
 
수출 호조와 내수침체가 그런 단면이고, 수도권으로 편중된 구조와 플랫폼 성장으로 쏠리는 독식화가 그렇다. 선출 권력과 기획재정부 간의 정책 소통이 그랬고, 정부의 견인과 다르게 발생하는 민간의 온도차가 그랬다. 서로 다른 곳으로 페달을 밟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다르지 않다.
 
TV프로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외발자전거 페달을 밟던 한 소녀의 감동적 스토리를 기억한다. 아름다운 내용의 미담을 볼 때면 위태로운 외발자전거가 아닌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박수치고 응원하는 진기명기가 된다.
 
외발자전거형 경제라해도 위기 속에서 힘을 모으고 더하면 ‘한강의 기적’처럼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우리다. 검은 호랑이의 기개처럼 새로운 전환의 역사를 쓰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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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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