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한국과 미국이 관세 후속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는 2주째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협상안 문구의 막판 조율만 남긴 가운데 정부는 미국과 자동차 등 품목 관세를 11월1일로 소급 적용하기로 합의, 비관세 분야도 추가 개방 없이 방어에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합의로 산업계 불확실성도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요. 양국 합의의 마지막 단계는 안보 분야 팩트시트로, 핵추진잠수함(핵잠)을 둘러싼 수싸움만 남았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오른쪽). (사진=뉴시스)
조현, 11일 캐나다행…루비오 대좌 여부 주목
12일 정부에 따르면 경제·투자 분야 등을 다룬 팩트시트는 대부분 마무리됐습니다. 현재 미국 측의 문안 수정 요구로 발표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가운데 조현 외교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부터 14일까지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확대회의 참석차 캐나다를 찾았습니다. 이번 G7 외교장관회의는 지난 6월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이어 외교 등 세부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조 장관은 G7 회의를 계기로 주요국 외교 장관과 양자 회담도 가질 예정입니다.
G7 외교장관회의에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참석합니다. G7 회의 일정 마지막에 루비오 장관과 대좌 여부를 알 수 있을 전망입니다. 조 장관과 루비오 장관의 만남을 계기로 한·미 양국 간 팩트시트 발표 관련 논의가 있을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이 자리에서 팩트시트 발표 일정에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3500억달러(한화 약 500조원) 규모로 약속된 한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2000억달러는 현금 투자, 연간 200억달러 상한을 골자로 관세 협상 후속 협의가 전격 타결된 바 있습니다.
이후 양국은 합의 문서를 지체 없이 공개할 예정이었는데요. 당초 일주일 안에 공개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와 달리 협상 타결 이후 2주 동안 팩트시트 발표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날짜를 예단하지 않지만 거의 마지막에 왔다"고 밝혔습니다. 김 장관은 팩트시트 발표 지연 사유가 미국 정부의 사정 때문이라고 선을 그었는데요. 그는 "미국 정부도 셧다운(일시적 업무중지)인 상황이고 절차가 굉장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뉴시스)
자동차업계 5조원 부담…농산물 시장 개방은 '방어'
정부는 대미 투자와 관세 관련 협의에 이견이 없지만 안보 상황 등 세부 사안 최종 합의까진 버티기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팩트시트 등의 발표 지연이 길어질 경우, 시장과 산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특히 관세와 관련해 자동차 등 품목 관세의 소급 적용이 관건이었는데요. 앞서 우리 정부 측은 자동차 등 특정 품목 관세 적용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8월 소급 적용을 제안한 반면, 미국 측은 발표 시점 또는 양해각서 체결 시점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한국이 요구하던 8월 소급 적용으로 합의됐다면 이 가운데 일부라도 보전받았지만 11월1일로 최종 합의된 상황입니다. 국내 자동차업계가 추가 관세 손해액이 발생할 우려를 덜게 된 건데요. 결국 자동차업계는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미국에 25%의 품목 관세를 납부했습니다. 그동안 협상 지연으로 업계가 부담한 관세액은 5조원으로 추산됩니다.
비관세 분야인 농산물 시장 분야는 방어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번 팩트시트에 개방 확대 계획이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앞서 미국 측은 완전한 한국에 농산물 시장 개방 등을 연일 주장한 바 있습니다.
외교가에선 이번 팩트시트 발표를 앞두고 막판 진통을 겪는 이유는 한·미 간 핵잠 건조 등 안보 사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합니다. 핵잠 개발과 관련해 미국 정부 내 부처 간 의견 차이가 부각, 최종 합의가 지연된 원인으로 파악됩니다.
특히 미국 상무부는 한국 측에서 추진하는 핵잠 건조보다 미국 내 건조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핵잠 건조를 승인하며 핵잠 건조 장소를 미국의 필리조선소로 특정했는데요.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한국 건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핵잠 건조를 기술 주권의 문제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한·미 양국은 관련 사안에 대해 이견 조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애초 팩트시트에는 핵잠 건조를 위해 우라늄 농축·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미국이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