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복부지방이 뇌 노화 촉진한다

근육량 많을수록 젊은 뇌 유지
미국 성인 1164명 MRI 분석

입력 : 2025-12-01 오전 10:00:02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 시인 데시무스 유베날리스(Decimus Juvenalis, 55~128)의 풍자시에 등장합니다. 원문은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기를 기도해야 한다”입니다. 이 문장은 19세기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교육정책가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공교육에서 체육이 중요한 교과로 자리 잡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근대 학교 교육을 받아들인 한국도 같은 흐름을 공유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봄·가을로 학교마다 체육대회가 열렸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국민체조를 했습니다. 입시 경쟁 속에 소외된 오늘날의 체육 과목을 생각하면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뇌 건강은 근육량에 비례한다. (이미지=Gemini 생성)
 
그런데 최근에는 단순히 ‘건강한 신체’라는 추상적 명제를 넘어, 근육량에 비해 내장지방이 적을수록 뇌의 생물학적 나이가 젊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11월30일부터 12월4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북미방사선학회(Radiological Society of North America, RSNA)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됩니다. RSNA는 전 세계 영상의학·방사선의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 단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 미주리대학교의 몰린크로트 방사선학 연구소(Mallinckrodt Institute of Radiology) 사이러스 라지(Cyrus Raji) 교수 연구팀은 건강한 중년 성인 1164명을 대상으로 전신 MRI를 촬영해 개인별 전체 근육량, 복강 내 장기 주변의 내장지방, 피하지방, 그리고 뇌 구조를 정밀 측정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뇌 MRI 구조 정보를 기반으로 뇌의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brain age)를 추정했습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연대기적 나이(chronological age)가 아니라 뇌의 실제 건강 상태와 노화 정도를 반영하는 지표입니다.
 
근육 손실 없이 내장지방 줄여야

분석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근육량에 비해 내장지방(visceral fat)이 많을수록 ‘예측 뇌 나이(predicted brain age)’가 실제 나이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뇌는 구조적으로 더 늙은 모습이었습니다. 반대로 근육량이 많고 내장지방이 적은 사람들은 뇌가 실제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라지 교수는 “근육이 많은 참가자일수록 뇌가 젊게 나타났고, 근육에 비해 숨겨진 복부지방이 많은 경우 뇌가 더 늙어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피하지방(subcutaneous fat)은 뇌 나이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체지방량 자체보다 지방의 분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연구의 의의는 체성분(body composition)과 뇌 건강의 연관성을 전신 MRI라는 정밀한 영상 촬영을 기반으로 통합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뇌 노화나 치매 위험을 평가할 때 흔히 간과되었던 근육·지방 분포가 사실상 뇌 건강의 중요한 예측인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체중이나 체질량지수(BMI)보다 ‘몸 안에서 지방과 근육이 어떻게 분포하는가’가 뇌의 나이를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뜻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뇌 MRI 촬영 결과를 분석하고 있다. (사진=RSNA)
 
연구팀은 “내장지방을 줄이고 근육량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이 뇌 노화를 늦추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근력운동, 식단 조절, 복부지방 축적 억제를 통합한 전략을 의미합니다.
 
최근 널리 사용되는 오젬픽 같은 GLP-1 계열 체중조절 약물은 체지방 감소 효과가 크지만, 동시에 근육 손실 위험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근육 보존과 내장지방 감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약물 개발과 임상 전략에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라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체성분 바이오마커와 뇌 건강 간의 연관성에 대한 기존의 가설을 검증했으며, 이러한 인자들이 향후 다양한 대사 중재 및 치료 연구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운동이 뇌 건강 지킨다’ 사실 재확인
 
이번 RSNA 발표 연구는 뇌 노화와 치매 위험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닙니다.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뇌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근육과 지방의 분포를 포함한 신체 전체의 대사적·구조적 건강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장지방을 줄이고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은 단지 멋있고 건강해 보이기 위한 선택을 넘어, 뇌를 더 오래 젊게 유지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결과는 신체와 뇌 건강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분명한 영상 데이터로 확인해 준 셈입니다. 근육은 단순히 골격을 지탱하고 움직임을 만드는 조직이 아니라 뇌를 보호하는 적극적 생리 조직이며, 내장지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뇌를 빠르게 늙게 만드는 ‘침묵의 가속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T1 강조 MRI(T1-weighted MRI) 시퀀스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강한 자기장 안에서 조직 속 수소핵(spin)이 정렬되었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T1 relaxation time)의 차이에 따라 영상 대비가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방식입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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