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발병 이틀 전까지도 의사로부터 ‘저위험’ 혹은 ‘문제 없음’ 판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심혈관 위험 계산기가 실제 환자를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기존 예방 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마운트시나이병원(Mount Sinai Hospital) 연구진은 2020~2025년 사이 처음 심근경색을 겪은 65세 이하 환자 465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발병 이틀 전 병원을 찾았다고 가정해 심혈관 위험 점수를 산정했습니다. 그 결과 위험 계산기인 ASCVD(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 Atherosclerotic Cardiovascular Disease) 위험 점수 기준으로 45%가 저위험 또는 경계위험군으로 분류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심장협회가 최근 도입한 새로운 점수 체계 ‘PREVENT(Predicting Risk of cardiovascular disease EVENTs)’는 오분류 비율이 61%까지 높아졌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11월21일 <미국심장학회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Advances)>에 발표되었습니다.
심근경색을 예측하는 지표로 활용되는 위험 점수가 실제 환자의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미지=NIH)
환자 대부분이 증상을 느낀 시점도 매우 늦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65명 중 53%가 발병 당일, 7%는 발병 48시간 내, 23%는 발병 일주일 이내 처음 윗가슴 통증, 호흡곤란 등을 호소했습니다. 환자의 60%가 발병 직전 2일 이내에서야 이상을 느낀 셈입니다.
위험 점수, ‘젊은 환자’일수록 과소평가
저위험군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ASCVD 기준 저위험·경계위험군 209명 중 61%가 발병 48시간 전 처음 증상을 경험했습니다. PREVENT 저위험군 210명 중에서도 65%가 직전 며칠 동안에야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증상과 위험 점수로 환자를 선별하는 기존 방식은 조기 예방 체계를 사실상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고 명백한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우리 연구는 인구 기반 위험 도구가 많은 개별 환자의 실제 위험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논문의 교신저자인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과대학 아미르 아마디(Amir Ahmad) 교수는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환자들을 심장마비 발생 이틀 전에 진찰했다면, 현재의 위험 추정 점수와 지침에 따라 추가 검사나 예방 치료를 권고받지 않았을 환자가 거의 절반에 달했을 것이다”라며 의미 있는 예방이 불가능한 상황을 설명합니다. 위험 평가와 증상 보고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예방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특히 65세 이하 첫 심근경색 환자를 집중 분석해 위험 계산 구조의 적정성을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의 확인 결과 ASCVD 위험 점수나 PREVENT 점수는 나이가 위험 계산에 크게 반영돼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실제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구조입니다. 사전에 진단되지 않은 동맥경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 경우에도 대부분 위험 점수가 낮게 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PREVENT는 저위험군 비율이 45%로 ASCVD보다 높았으며, 고위험군 비율은 3%에 그쳤습니다. 연구진은 “PREVENT가 고혈압이나 남성에게 위험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새 모델이 이전 모델보다 정교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심근경색의 경우 환자의 절반 이상이 발병 당일이나 발병 48시간 이내에 비로소 증상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3년 12월 튀르키예의 한 정치인이 의회 연설 도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사진=뉴시스)
연구진은 심근경색 발생 과정의 특성상 증상이나 점수 기반 선별의 한계는 구조적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심근경색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죽상반’이라고 불리는 플라크입니다. 치아에 쌓이는 플라크가 충치와 치주질환의 원인이 되듯이 혈관 내 플라크는 동맥경화와 심장질환의 위험 요인입니다. 관상동맥 안에 쌓이는 죽상반(플라크)은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침착물로 혈관을 좁히고 혈류를 방해합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수년간 아무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혈관을 조금만 좁힌 상태에서도 갑작스럽게 파열돼 심근경색을 일으킵니다.
플라크 조기 발견이 유일 예방책
반면 위험 점수는 혈압이나 나이, 흡연력 같은 간접 지표만 반영해 플라크의 실제 상태를 파악할 수 없게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연구진은 영상 검사를 조기 선별에 활용하는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관상동맥 석회화 점수(Coronary Artery Calcium Scoring)나 관상동맥 컴퓨터 단층촬영(CT)과 같은 영상 기반 동맥경화증 검출이 전통적인 위험 인자 기반 모델보다 우수하며, 특히 저위험군으로 분류될 위험군 개인을 식별하는 데 효과적이며, 모든 위험 범주에서 장기적 원인별 사망률을 더 정확히 예측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에서도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기초 수치를 관리하고 있지만, 플라크는 콜레스테롤이나 혈압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가족력이나 흡연력,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이 있는 경우 위험 점수가 낮아도 관상동맥 석회화 점수 측정이나 영상 검사를 적극 고려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논문의 결론으로 “심근경색 위험이 있는 환자를 식별하는 데 있어 ASCVD 위험 및 증상 기반 선별 검사는 부적절하다. 위험군 인구의 거의 절반을 놓치는 것은 심각한 공중보건적 함의를 지닌다”며 오랫동안 위험 점수와 증상이 심근경색 예방의 관문 역할을 해왔지만, 이 접근이 실제 환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격차를 해소하려면 “‘단기적, 연령 가중 위험 예측’에서 ‘평생, 질환 중심 예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영상 검사, 바이오마커, 새로운 위험 인자를 통합하면 개입이 최대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인 무증상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향후 연구의 초점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증상과 점수를 기다리는 기존 모델에서, 질환 자체를 조기에 확인하는 방식으로 예방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