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지난해 12·3 비상계엄은 국가가 의지만 있다면 통신·플랫폼·언론에 개입할 여지가 법·제도 안에 열려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습니다. 방송·통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합의제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당시 2인 체제로 사실상 마비되며 정보 통제 위험이 증폭된 점은 더 큰 문제였습니다.
국제 기준이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도 정부 권한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런 규제 기관이 독립적으로 실질적으로 작동하느냐 여부입니다. 방송·미디어·플랫폼 권한을 통합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1기 출범을 앞둔 지금, 한국이 다시 확인해야 할 핵심 과제는 권한 확대가 아니라 이러한 견제 구조를 어떻게 회복하고 보장할 것인가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계엄법 제9조에 따르면 비상계엄 지역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통신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지만, 전기통신사업법 제85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전시·사변·천재지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중요 통신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전기통신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 제한·정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해 4일 새벽 4시30분 국무회의에서 해제안이 의결될 때까지 통신망 자체의 대규모 차단은 없었고 온라인을 통한 실시간 의사소통은 유지됐지만, 계엄과 전기통신사업법이 결합할 경우 언제든 통신·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제한이 가능하다는 구조가 드러난 만큼 정보 통제 가능성은 더 이상 가정의 문제가 아니게 됐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할 수 있었던 권한' 자체보다, 그 권한을 견제해야 할 규제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비상계엄 논란이 벌어진 시기, 방통위는 2인 체제로 장기간 운영되며 합의제 원칙이 사실상 붕괴돼 있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2인 방통위 체제에서 이뤄진 의결은 합의제 기관의 본질을 훼손한 중대한 절차적 하자"라며 YTN 최대주주 승인 처분을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견제 구조가 붕괴된 상황에서 국가가 가진 통제권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입니다.
10월1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관계자가 방송통신위원회 현판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추진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체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방미통위는 방송, 미디어, 온라인 플랫폼, 통신 규제를 통합해 단일 기관에서 총괄하도록 설계됐습니다. 방송사 승인·재허가, 플랫폼 사업자 규율, 유튜브·틱톡 알고리즘 투명성 요구, 온라인 광고·데이터 규제까지 모두 한 기관이 맡게 됩니다. 이는 규제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지만, 권한 집중에 따른 새로운 위험도 동시에 제기됩니다.
비상계엄이 드러낸 본질적 교훈은 명확합니다. 정보 통제 위험은 제도 밖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견제 장치가 무력화된 제도 안에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계엄 사태 당시 방통위의 기능 상실은 국가 위기보다 더 큰 위험 요인이 됐으며, 정보 통제가 제도적으로 얼마나 손쉽게 가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국제 기준 역시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국제연합(UN) 인권기구는 "국가가 비상 상황을 이유로 정보 흐름을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가장 빠른 경로"라고 경고합니다. 유럽연합(EU) 디지털서비스법(DSA)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제 기관 독립성 기준도 플랫폼·통신·미디어 규제는 독립적·합의제 구조에서 운영돼야 하며, 권한 집중은 반드시 투명성과 절차적 견제가 수반돼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방미통위 논쟁의 본질은 거대한 규제 기관을 새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정보 통제가 자의적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견제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가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방통위의 2인 체제에서 드러난 합의제 붕괴 문제, 정치적 개입 가능성, 규제·승인 권한의 사유화 논란은 방미통위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방미통위는 새로운 정보 질서를 설계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유튜브·틱톡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알고리즘 규제, 데이터 접근권, 이용자 보호 기준 등 새로운 정보 환경 규범을 만드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역시 권한의 크기보다 규범의 민주성, 투명성, 독립성이 핵심입니다. 플랫폼 규제는 곧 여론 규제이기 때문입니다.
방미통위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방미통위에 필요한 것은 권한 통합의 크기가 아니라, 합의제 원칙을 회복하고 독립성을 보장하며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견제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계엄 사태는 정보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 정부의 권한이 아니라, 언제나 작동하는 제도적 안전장치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