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디지털 전환 가속…“선사 주도 AI 기술 개발 필수”

선형·선종별 운항 조건 달라
조선소 중심 기술개발 ‘한계’
선사 참여 테스트베드 제안

입력 : 2025-12-02 오후 3:04:01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자율운항 시대에는 원격 조정이 가능해지면서 해킹을 당할 경우 선박이 통째로 탈취돼 엉뚱한 곳으로 향할 위험도 있습니다. 사이버 위험까지 고려한 예측 가능한 운항 기술을 확보하려면 실제 운항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사의 경험과 데이터가 필수적입니다.” 
 
해운·조선 산업에서 탈탄소,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기술 수요자인 해운업계 의견이 개발 과정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자율 운항, 선박 연료 절감, 데이터 표준화 등 미래 기술의 성패가 실제 운항 데이터를 보유한 선사에게 달려 있다는 분석입니다.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 해양패권 스마트해양기술 세미나’에서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선박에는 다양한 센서가 탑재돼 어떤 해역에서 어떤 속도로 운항할 때 연료를 얼마나 쓰고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설계가 실제 운항에서 구현되는지 검증하는 핵심 데이터로 선사가 생산하는 만큼 기술 개발은 선사와 조선소가 함께 협력하는 구조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 해양패권 스마트해양기술 세미나’에서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양 부회장은 선사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연료비 절감이라고 강조하며, 탈탄소 전략 또한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먼저 기존 조선소 중심으로 개발돼온 ESD(에너지절감장치) 기술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습니다. 선형과 선종마다 운항 조건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획기적인 연료 절감을 내려면 선종별로 특화한 기술이 필요하지만, 현재 설치되는 ESD는 대부분 1~10% 수준의 절감 효과에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료 절감의 잠재력은 자율운항 기술에서도 두드러집니다. 현재 개발 단계인 2단계(부분 자율) 기술만으로도 5% 이상의 연료 절감 효과가 나타난다는 분석이 있지만, 선사들이 주목하는 핵심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얼마나 효율적·안전하게 운항 품질을 높이느냐입니다. 3단계 무인운항으로 발전할 경우, 더 정교한 항로 선택과 일정 관리가 가능해져 절감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는 항로·선속 최적화 기술과도 직결됩니다. 기상 변화에 따라 최적 경로를 선택하고, 해당 선박이 감내할 수 있는 해상 조건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가장 경제적인 운항 방식을 제시하는 기술은, 자율운항 기술과 결합될 때 효과가 배가됩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사진=삼성중공업)
 
항만 운영과의 연계성 또한 연료 절감의 중요한 축으로 제시됐습니다. PCO(Port Call Optimization) 기술을 통해 예상 도착 시간을 정확히 맞추면 항만 앞 대기로 인한 불필요한 가속·감속을 줄일 수 있습니다. 선체 오염이나 엔진 열화로 인한 성능 저하를 조기에 감지해 대응하는 선체 관리 최적화 기술 역시 운항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핵심 수단으로 꼽혔습니다.
 
해운업계는 이 같은 기술들이 조선소 중심 구조에서는 충분히 현장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양 부회장은 “HD현대의 오션와이즈나 삼성중공업의 SAS 등 AI 기반 운항 기술을 활용해 연료 절감 실증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념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선사 입장에서는 기술적 세부 내용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며 “조선소가 말하는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 객관적인 위치에서 실제 절감 효과와 기술의 신뢰성을 검증해줄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암모니아 추진선, SMR(소형 모듈 원자로) 등 고위험·고가치 기술의 도입을 위해서는 선사 참여형 테스트베드 구축이 필수”라며 “실선 적용 전 육상에서 추진·전력 시스템의 동적 부하 환경을 재현해 안전성과 내구성을 검증해야 하고 기술 개발 초기부터 선사가 참여해 실제 운항 현장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피드백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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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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