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빨간깃발이 날리지 않았으면

입력 : 2021-11-24 오전 6:00:00
자동차의 속도를 시속 3,2km(시내)로 제한하는 '레드플래그법'. 이 법은 1865년부터 1896년까지 30년 동안 영국에서 시행됐다. 자동차로 인해 마부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우려했던 마차연맹(지금으로서는 마부들의 노동조합 정도)이 의회와 협상 끝에 만들어 낸 법이다.
 
자동차에 3명의 승무원을 승차하게 했는데 그 중 한명이 자동차 60야드(약 55미터) 앞에서 깃발을 들고 다니면서 마차의 통행을 돕고, 운행 중에 말과 마주치면 차량을 정지하게 한 것이다.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으로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는데에는 어쩌면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자동차 기술의 우위를 미국에 넘겨준 핵심적 계기가 된 사건으로 회자된다. 또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규제의 덫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 자동차 산업의 변화 국면에서도 분명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친환경차로 대표되는 전기차와 수소차는 내연기관이 없다. 즉 화석연료로 운동에너지를 발생시켜 움직이는 150년간의 자동차 개념이 바야흐로 바뀌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문제는 친환경차 보급이 빨라지면서 기존 부품제조업의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부품이 3분의 1 정도로 줄면서 내연기관 부품 생산 인력은 크게 줄고,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는 생산라인 개편을 기하지 않은 중소 부품업체들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 18일과 19일 이틀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 총회에서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는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의 순수전기차 점유율이 2030년까지 최대 35%로 확대될 것으로 봤다. 특히 알릭스파트너스는 친환경차 보급으로 EU에서만 완성차와 관련 협력사 종사자 63만명 중 4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도 친환경차 시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고용이 30%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2025년과 2030년 사이 정도가 미래차 정착시기로 본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불과 3~4년 정도다. 여기에 자율주행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운행인력 역시 고용 위기감이 고조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전기와 수소차와 같은 미래차 부품기업 육성과 지원 그리고 배터리 신소재 개발과 공급, 충전설비 제조시스템과 기술개발 등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나아가 업계 안팎에서는 미래차 펀드 조성, 핵심부품 개발 지원, 미래차 인력 양성에 정부가 팔을 걷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친환경차 전환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 정책 당국이 규제와 법의 미비와 산업 지원 부족 등을 이유로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서는 안된다. 기업도 투자와 인력 양성에 시간이 걸린다 해서 친환경 산업 확산 기조에 제동을 걸어서는 안된다. 
 
이미 탄소중립은 글로벌 대세이고, 기술혁신은 경쟁의 틀 속에서 억제할 수 없는 기조다. 이를 이겨내는 국가와 기업이 앞으로의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하고 이끌어 갈 것이다. 속도 조절이 아니라 속도 내기를 위한 과감한 혁신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빨간 깃발을 내걸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거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시간이 많지 않다. 
 
권대경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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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