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실수로 가압류 취소… 대법 "국가배상 인정 안 돼"

가압류 등기 말소로 채권자 배당 못 받아
"법관 오판 배상은 명백한 위법 인정돼야"
"가압류 취소결정 효력정지 등으로 구제 받을 방법 있어"

입력 : 2022-04-1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판사의 실수로 부동산 가압류가 취소돼 배당을 받지 못한 채권자가 효력정지 신청 등과 같은 구제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국가배상에 의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법관의 재판에 법령 규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더라도 이로써 바로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2조 1항에서 말하는 위법한 행위로 되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며 “법관의 오판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거나 직무수행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원고(채권자)는 가압류취소절차에서 가압류취소에 불복하는 당사자에게 즉시항고와 효력정지 신청 등 구제절차를 활용한 조치를 스스로 취하지 않았다”며 “가압류취소사건의 1심 재판부가 잘못된 취소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원고로서는 효력정지 등 조치를 취해 손해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시정을 구하지 않고서는 원칙적으로 가압류취소재판의 잘못을 이유로 국가 배상을 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2013년 8월 말 B사를 상대로 미등기 부동산인 근린생활시설 건물에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은 그해 9월 A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해당 건물에 가압류결정이 집행됐다.
 
이후 B사는 가압류 등기를 말소하기 위해 2014년 4월 법원에 A씨를 상대로 한 제소 명령 신청을 냈다. 법원은 B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A씨에게 ‘이 결정을 송달받은 날부터 20일 안에 본안의 소를 제기하고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내용의 제소명령을 내렸다.
 
2014년 5월 12일 제소명령 등본을 송달받은 A씨는 제소 기간 마지막 날인 2014년 6월 2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증명서류도 제출했다.
 
그런데 B사는 A씨가 기간 내 본안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며 가압류 취소 신청을 냈고, 법원도 B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이 사건 가압류 결정을 취소했다. 이 사건 법률상 제소명령 이행기한은 2014년 6월2일까지(일요일인 2014년 6월1일 제외)로 이 기간 만료일을 착각해서 벌어진 일이다.
 
A씨는 즉시 항고했고 그해 12월 항고심 재판부는 1심 법원이 제소기간 만료일을 잘못 계산했다며 가압류 취소 결정을 뒤집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앞선 가압류 취소 결정으로 가압류 등기가 말소된 탓에 A씨는 경매 절차에서 배당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건물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 앞으로 넘어갔다.
 
이에 A씨는 제소기간 내 적법하게 본안의 소를 제기했음에도 담당 재판부 착오로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7억8233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담당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법관의 직무수행상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법관의 잘못된 판단이 항상 불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직무수행상 통상의 기준을 현저히 위반한 때는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A씨에게도 40%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2심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비율을 나머지 60%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국가에 A씨 청구액 7억8233만원 중 60%인 4억694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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