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생태계의 근간, ‘아이팟’ 퇴장에 바치는 헌사

아이튠즈 동기화, 애플 기기 간 연속성의 초석
아이폰과 같은 운영체제로 '밀어서 잠금해제'
스마트폰 보급 초기 아이폰의 저렴한 대체제로
HW·SW 유기적 결합, 사용자 경험 근간으로 남아

입력 : 2022-05-12 오후 3:40:53
(부음) 애플 아이팟 터치 본품상
 
△아이팟 터치(iPod touch) 7세대 단종. 직관적인 디자인과 사용 경험으로 애플 생태계의 근간을 체험했던 전세계 사용자의 애장품상.
 
-일시 : 2022년 5월10일(화)
-빈소 :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
-발인 : 미정
-장지 : 전세계 아이팟 주인의 책상 서랍과 청바지 주머니
 
2019년 5월28일에 출시된 7세대 아이팟 터치는 A10 퓨전 칩을 탑재해 증강 현실 체험과 그룹 페이스타임, 256GB 저장 공간을 구현했다. 애플은 2022년 5월 마지막 아이팟인 이 제품을 단종한다고 밝혔다. (사진=애플)
 
진열대서 사라진 마지막 아이팟
 
지난 10일(현지시간) 발인 없는 부음이 애플 웹사이트에 개시됐다. 제목은 '음악은 계속된다(The Music lives on)'. 첫번째 아이팟이 출시된 지 21년만이다.
 
애플 월드와이드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 그렉 조스위악은 "아이팟의 정신은 아직 살아있다"며 "애플은 아이폰은 물론 애플 워치, 홈팟 미니, 맥, 아이패드와 애플TV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 전반에 걸쳐 탁월한 음악 감상 경험을 통합했다"고 이번 단종의 배경을 밝혔다.
 
마지막 아이팟 제품군으로 진열대를 지켜온 아이팟 터치는 이제 화면 아래 달린 구시대 유물 홈 버튼과 함께 눈 감게 됐다.
 
2001년 10월23일 출시된 오리지널 아이팟(iPod)은 1000곡을 담을 수 있는 용량과 10시간 사용 가능한 배터리를 약 185g 무게에 담은 최초의 MP3 플레이어였다. (사진=애플)
 
아이팟은 애플이 추구하는 지향점의 정수였다. 스스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엔드 투 엔드' 회사가 아니라면 기획조차 불가능한 제품이었다. 2001년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나타난 아이팟은 사람들에게 음악 만지는 재미를 가르쳐줬다.
 
순백색의 전면부에 달린 트랙 휠을 돌리면 노래 1천곡이 줄줄이 따라 굴렀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된 뒷면을 감싸쥐면 이 작은 팟(Pod·공간)의 문화적 무게감이 더해졌다. 업계 최초로 도입한 흰색 이어폰도 하얀 본체가 주는 느낌을 제품 전체로 확장시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데스크톱 맥 운영체제(OS)를 애플 제품에만 탑재하는 방식에 의구심을 품었던 공동 설립자 스티브 워즈니악도 아이팟을 계기로 회의론을 접었다. 2007년 1월 아이팟 매출로 발생한 수익은 애플 전체 수입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면 일회용품 질감의 플라스틱 상자에 기껏해야 노래 열댓개를 넣을 수 있던 MP3 플레이어 제조사들은 날아오는 운석을 무력하게 쳐다보는 공룡 신세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아이팟을 보여준 한 기자에게 곤혹스런 표정으로 "매킨토시에만 연결되느냐"고 물었다. 후일 MS가 대항마 준(Zune)을 출시했지만 이 말이 어느 길바닥에서 굶어죽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음악은 공짜가 아니다
 
아이팟은 불법 음원 유통의 온상으로 지목된 MP3 플레이어를 음반 시장의 총아로 끌어올린 제품이기도 했다.
 
2003년 4월 애플의 음원 판매 장터 아이튠즈(iTunes) 스토어가 문을 열자 음악 산업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아이튠즈 스토어 담당자 에디 큐가 서비스 6개월 뒤 세울 것으로 내다본 100만곡 판매 기록은 단 6일만에 깨졌다. 2010년 2월 100억번째 노래가 팔렸다.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정당한 대가를 내고 아이팟에 음악을 넣고 싶어했다. 아이팟은 스티브가 강조한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였다.
 
곡당 99센트를 주고 내려받은 음악은 아이튠즈가 설치된 맥(Mac)과 윈도우 PC에서 아이팟으로 '동기화' 됐는데, 거꾸로 아이팟에서 음악을 추출해 공유하는 건 불가능했다. 동기화는 음악 파일의 불법 복제를 막는 장치였다. 아이팟 포장지에는 "음악을 훔치지 마세요(Don't Steal Music)"가 적혀있었다.
 
2010년 아이폰4와 함께 출시된 4세대 아이팟 터치. 앨범을 스르륵 넘겨보며 노래를 틀 수 있는 '커버 플로우'는 아이팟의 대표 기능 중 하나다. (사진=이범종 기자)
 
 
 
맥과 모바일 잇는 사용자 경험의 시초
 
아이팟은 맥을 디지털 허브로 삼고 모바일 기기는 단순화해 사용 경험을 연결한다는 스티브의 밑그림을 실현했다.
 
아이팟으로 정립된 이 기조가 아이폰 탄생의 나침반이 됐다. 애플이 아이패드 개발 도중 먼저 출시한 아이폰은 자사 데스크톱 운영체제 맥OS 기반인 아이폰OS(오늘날 iOS)로 움직였다. 직관적인 조작방식은 아이팟 경험의 연장선이었다. 데스크톱인 맥이 나무 기둥이라면 모바일 제품은 가지와 잎사귀였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 월드 행사에서 '터치로 조작하는 와이드 스크린 아이팟', '혁신적인 휴대전화',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 통신기기'를 공개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세 가지를 결합한 아이폰을 발표했다.
 
1세대 아이팟 터치가 이때 나왔다. 아이폰과 같은 3.5인치 화면과 홈 버튼을 갖추고 iOS로 구동되는 이 제품은 '전화 기능을 뺀 아이폰'으로 불렸다. 피처폰 사용자들은 아이폰보다 저렴한 아이팟 터치를 사고 '밀어서 잠금해제'했다. 앱 스토어에서 게임을 내려받고 카카오톡도 하며 iOS에 익숙해졌다. 이후 아이폰이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아이팟 터치도 새로 출시되며 iOS 사용자를 늘려갔다.
 
스티브 잡스가 2011년 6월 아이클라우드를 소개하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자동으로 나머지 기기들에 옮겨지는 실시간 동기화를 설명하고 있다. 내버려 두면 ‘그냥 되는(It Just Works)’ 애플식 연속성의 시작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드는 애플의 강점이 다시 부각된 순간이다. 최근 구글과 MS는 안드로이드와 윈도우즈 기기 간 실시간 동기화 기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사진=애플 이벤트 팟캐스트)
 
홈팟·에어팟...후속 팟(Pod)이 명맥 이어
 
애플의 생태계는 점차 견고해졌다. 애플은 2011년 아이폰4S와 함께 실시간 동기화 서비스 아이클라우드를 내놨다. 캘린더와 이메일, 책갈피, 사진과 연락처 등이 아이폰-아이팟 터치-아이패드-맥으로 연동됐다. 아이팟 터치에서 앱을 내려받으면 같은 앱이 아이패드 화면에 맞는 형태(유니버설 앱)로 자동 설치됐다.
 
나중에는 아이폰과 같은 와이파이(wifi)망을 쓸 경우 아이패드나 맥, 아이팟 터치로 통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 영상통화 '페이스타임(FaceTime)도 마찬가지다.
 
아이튠즈-아이팟 동기화로 시작된 제품 간 연결 기조는 2015년 출시된 '애플 뮤직'으로 이어졌다. 기존 아이튠즈에 저장된 재생목록과 개인 소장 음반들이 애플 뮤직 계정 안에 통합돼 스트리밍으로 제공됐다. 개인이 편집한 노래도, 지금은 유통되지 않는 소장곡도 아이클라우드가 '음악' 앱에 통합하고 소유자 계정에 한정해 스트리밍 해준다.
 
그 사이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됐고 아이팟 터치의 위치도 애매해졌다. 출시 주기가 길어져 단종설이 나돌다가 2019년 7세대가 출시됐다. 반면 애플워치와 에어팟, 홈팟과 애플TV 등은 애플 뮤직으로 한데 묶여 아이팟의 이점을 흡수했다.
 
아이팟은 디지털 시대 예술 소비에 대한 관념을 바꾸고 물러났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기적 결합을 토대로 만들어진 사용자 경험의 근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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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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