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티칸 '평화달리기'④)바위섬

입력 : 2022-09-05 오후 1:52:34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 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김천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길에 체코 출신 정관스님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삼보일배하는 곡성에 들러 함께 힘을 실어주었다. 순천 송광사에서 서울 조계사까지 3개월 정도 작정을 하고 떠난 길이다. 스님은 무릎보호대와 팔보호대를 하시고 저고리가 땀에 흠뻑 젖은 채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가 우리 일행이 나타나자 반가이 맞았다. 스님이 고행길에 나선 것은 나로부터 평화를 찾고 세계 평화의 원력을 찾기 위해서 길 위에 나선 것이다.
 
스님은 “전쟁도 한 생각에서 시작해 그 생각을 내려놓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세계의 평화는 개인의 평화에서 시작한다”면서 내 여정 길에도 수많은 마음의 시험이 들 터이니 그것을 극복하고 뜻을 이루기 바란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하고 가혹한 폭력적인 경험이다. 그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하고 인간성은 피폐하게 된다. 개인과 집단의 삶을 여지없이 파괴한다. 사망자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고 친구이다. 정관스님은 특히 어린 아이들의 희생에 가슴 아파한다.
 
80년 5월,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광주, 바다 한 가운데 외로이 있는 바위섬을 보며 '5월의 광주'를 떠올렸다는 배창희가 만들고 김원중이 노래한 곡이 바로 그 유명한 ‘바위섬’이다. 이 노래는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광주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광주에 오면 80년 5월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이날 내 책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 북콘서트의 대담자가 김원중이라니!
 
그는 불과 며칠 전에 제의를 받고 흔쾌히 수락하고 그 사이에 두꺼운 책 세 권을 밑 줄쳐가며 읽어보고 예사롭지 않은 대담을 이끌어가는 매끈한 진행을 해주었다. 덕분에 뇌경색 후유증으로 '어버버'한 발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에게 의사전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5.18 민주광장에서 십여 명이 모여 출정식을 하고 5.18 묘역으로 가서 참배했다. 멀고, 두렵고, 한편 근거 없는 희망을 갖고 떠나는 길에 민주 영령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때 나는 말년 휴가를 나와 서울역 광장 시위현장을 따라다니다 귀대하니 바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었다.
 
5.18 묘역에서 순창으로 달려갔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을 달리니 무겁던 마음이 상쾌해진다. 숲에 살아 있는 흙 속에 숨어 있는 미생물이 분비한다는 천연 항우울제 세로토닌은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순창에서는 순창 농민회가 환영식을 해주었다.
 
피로가 누적되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 가운데 이 여정을 기록하는 것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부여한 사명이다. 이 여정의 성공 여부는 400여 일의 여정 동안 결국 어떻게 피로를 관리하는 가에 달렸다. 나는 오랜 달리기 여정 끝에 나만의 경험에 의해 축적된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습관이 몸에 배었다.
 
그것이 남보다 결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는 체력으로도 남들이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아시럽 대륙을 횡단한 영업비밀이기도 하다. 그것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러 온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나는 이 여정을 성공하기 위하여 내 몸이 가장 원하는 것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강명구 평화마라토너(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체코 출신 정관 스님(맨 오른쪽)이 김천에서 광주로 향하는 길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