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SID "론스타 '먹튀' 넘어 '속튀'…금융당국도 책임"

법무부, ISDS 중재판정문 요지서 공개
다수의견 "인수승인 지연, 징치적 동기서 비롯"
"정치인들, 매각가격 인하하고 성공 축하도"
소수의견 "승인 지연은 론스타 주가조작이 원인"

입력 : 2022-09-06 오후 5:57:3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6일 환율 기준 한화 약 2975억원)와 지연이자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문 요지서가 공개됐다.
 
법무부가 6일 오후 공개한 ‘한국-론스타’ ISDS 판정 요지서에 따르면 2명의 중재인(다수의견)은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점에 비춰 단순히 ‘먹고 튀었다(Eat and Run)’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 볼 수 있다"면서도 "한국 금융당국 역시 부당하게 외환은행 매각승인을 보류했기 때문에 양측 책임이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1명의 중재인(소수의견)은 론스타가 주가조작 사건의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면 애초에 외환은행 매각승인이 보류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구 협정 'industry' 해석 따른 관할 쟁점

우선 관할권 부분에선 1976년 발효된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구 협정)에 명시된 ‘industry’ 해석이 큰 쟁점이 됐다.
 
론스타 측은 1976년 구 협정의 ‘industry’는 단순히 제조업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일반적인 경제활동(산업)을 포괄하므로 자신들의 투자가 1976년 협정의 보호 대상에 해당돼 중재판정부 관할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industry’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론스타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론스타의 투자는 ‘industry’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1976년 협정 위반 주장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게 중재인들의 판단이다.
 
2011년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2011년 3월 27일 신 협정) 위반 ‘분쟁’ 관할 부분에서도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2011년 신 협정 발효 전에 발생한 분쟁은 투자분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08년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외환은행 매각승인 관련 분쟁은 본안 판단 범위에서 제외됐다.
 
"심사보류, 정당한 규제목적 아니야"
 
다만, 2011년 이후 이뤄진 론스타-하나금융지주 간 외환은행 매매 계약 과정을 놓고 중재판정부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여기선 한국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매각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인수승인 심사 절차를 부당한 의도를 가지고 지연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2명의 중재인(다수의견)은 “한국 금융위원회가 (외환은행) 인수승인 심사에서 은행업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고려할 수 있고 법령상 심사기간을 도과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Wait and See’(보류) 정책이 정당한 규제 목적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금융위원장에게 가격인하가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가격인하 이후에는 가격인하를 성공한 것을 축하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 “론스타가 (외환은행) 가격 인하를 수용한 것은 금융위의 부적절한 가격 개입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며 “금융위의 매각가격 인하 노력 관련해 언론기사, 하나금융 관계자와 론스타의 대화 등이 증거로 제시됐고, 하나금융 관계자는 론스타 관계자에게 가격을 인하하면 금융위의 정치적 부담이 낮아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고 밝혔다.
 
반면 중재인 1명(소수의견)은 “(외환은행) 매각가격 인하압력이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고, 설령 그러한 가격 인하압력이 있어서 이를 금융당국에 귀속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가격인하 압력행위를 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론스타 측 추측만으론 대한민국 국가책임 귀속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그는 “특정 작위나 부작위를 국가책임으로 귀속되기 위해서는 국가와의 ‘밀접한 관련성(close connection)’이 존재해야 하지만, 금융당국에 귀속될 수 있는 행위로서 ‘가격인하를 위한 암묵적 압력(covert pressure)’을 들고 있는 다수의견은 오직 간접적 정황증거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어 “하나금융 관계자의 ICC(국제상공회의소) 절차에서의 증언은 금융위가 당시 막대한 정치적 압력 하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금융위는 매각 가격인하를 요구한 적은 없다”며 “하나은행 측은 매각 가격이 인하되면 금융위가 이를 반길 것으로 추측했을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하나금융 관계자의 본 ISDS 절차에서의 증언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격인하 압력을 금융당국에 귀속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제법 위반이 아니다”라며 “금융당국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관리책임이 있고, 다수의견은 이러한 금융감독에 관한 역할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론스타가 주장하는 손해의 원인이 한국의 부당한 조치에 기인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갈렸다. 다수의견에 선 중재인 2명은 "론스타의 주가조작 유죄판결 및 금융위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면 하나금융에의 외한은행 매각은 적시에 승인돼 관련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금융당국과 론스타 모두 매각가격 인하에 직접적이고 중요하게 기여했다"고 봤다.
 
반면 소수의견은, 만일 매각가격 인하 관련 금융위의 국제법 위반 사안이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론스타의 손해와 금융위의 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소수의견을 낸 중재인은 “론스타가 주가조작 사건 관련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대법원이 이를 파기할 때까지 금융위는 외환은행 매각 관련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고 하나금융의 인수승인을 준비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 후 주가조작 유죄판결이 없었다면 론스타는 정상적으로 외환은행을 매각해 손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이로 인해 외환은행 매각승인이 지연된 것이기 때문에 론스타의 손해와 금융위의 승인심사 지연 간에는 인과관계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ISDS ‘절차적 하자’ 등 반박 예상
 
법무부는 조만간 판정 취소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금융위가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1명의 소수의견 등을 참고하는 한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2019년 론스타-하나금융지주 ICC 결정문’ 관련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하는데 있어 금융위에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재 당사자는 중재판정부의 월권, 중재판정의 이유 누락,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등 5가지 사유를 근거로 중재판정 후 120일 이내에 ICSID 사무총장에게 단 한 번 판정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법무부가 판정 취소 절차를 진행하면 ICSID는 새 취소위원회를 구성한다. 3명의 새 심판 구성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고, 서면 공방, 심리 등을 거쳐 최종 결정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론스타. (사진=연합뉴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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