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플랫폼과 다양성, 그리고 안정성

입력 : 2022-10-18 오전 6:00:00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불거진 카카오 먹통 사태에 일상이 멈췄다. 으레 그러했듯 이번에도 일상이 멈출 정도의 충격을 겪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간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반강제적으로 돌아보게 된 현재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인가. 한마디로 요약된다. 너나 할 것 없이 플랫폼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전국민의 92%가 사용하는 앱이 멈춘 여파는 그만큼 컸다.
 
주말에 겪은 일련의 사태, 그리고 관련 증언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당장 업무처리가 급한 이들은 서둘러 타 메신저를 다운로드하기 바빴고, 택시를 타려던 이들은 카카오T 대신 급하게 다른 택시 플랫폼 앱을 찾아 나섰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은 평소 즐겨 활용하던 카카오 인증을 SMS 인증으로 갈음했다. 그나마 이는 대체재가 있기에 가능한 대응 방식이었다. 카카오톡 로그인이 필수인 경우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당장 이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컸던 소상공인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예약도 주문도 멈춰섰다는 증언이 이어졌고, 급기야 소상공인연합회는 카카오 피해 접수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거대 플랫폼들은 이처럼 알게 모르게 일상 곳곳에, 생계현장 곳곳에 일종의 패턴을 심어왔다. 특히 이번 먹통 사태는 메신저의 영향력에 대해 절감하게 했는데, 사실 이 정도면 부가통신사업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카카오 먹통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은 '부가적인'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다른 메신저를 쓰면 되지 않냐고? 그러려면 대다수가 함께 이동해야 한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들 이용하는 단체 카톡방을 떠올려 보시라.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십, 수백명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은 이미 하나의 공동체나 마찬가지다. 그곳이 팀이고, 회사인데 나 혼자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19로 멈춘 일상을 그나마 움직이게 한 게 플랫폼 기업이었는데, 플랫폼이 멈추니 코로나 상황 못지 않게 일상이 다시 멈췄다는 게 참으로 공교롭다. 또 개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작금의 시대에, 일종의 기술표준이 우리 삶에 사실상 동시에 강요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 때 파급력이 생기는 플랫폼, 그리고 모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다양성. 이 둘은 양립 가능할까? 이번 화재가 남긴 묵직한 질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어려운 문제이긴 하나, 결국 기술과 다양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카카오가 데이터를 한곳에 중점적으로 모아둔 것이 화를 키웠듯, 한가지 기술에 모든 사람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역시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플랫폼의 가치가 흔들릴 만큼의 변화, 그러니까 다수의 메신저 앱들을 각자의 취향에 따라 사용하는 수준의 큰 변화가 앞으로 일어날지는 사실 모르겠다. 당장 눈앞의 편의성이 더 중요하기 마련인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결국 또 잊혀질 테니 말이다. 다만, 이번에 한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플랫폼의 가장 큰 미덕이자 존재의 근간은 바로 안정성에 대한 신뢰라는 점이다.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연결이 종종 끊어지는 곳에는 오래 머물 수 없다. 그곳이 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먼저 끌어 모은 곳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먹통 30시간'이 카카오에 뼈에 새길 교훈으로 남기를 바란다. 시간이 흐른 후 '카카오 공화국'이 오명 아닌 애칭으로 남게 하려면, 지금부터 한걸음 한걸음이 정말 중요하다.  
 
김나볏 중기IT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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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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