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편하지만 씁쓸한 명절 풍경

입력 : 2023-01-26 오전 6:00:00
기자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입니다. 당연히 연차가 쌓일수록 만난 사람도 많아지고 관계도 넓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고 지내도 언제 무슨 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연히 별로 관련 없는 분야의 사람을 만나서 받은 명함도 잘 보관해둡니다. 요즘엔 명함이나 연락처를 앱이나 스케줄러에 저장해 관리할 수 있지만, 습관인지 아직도 책상 한쪽에 고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기자 김창경이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는 이렇지만 사인 김창경의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땐 사람 만나는 게 좋아 어느 자리에나 얼굴을 내밀었어요. 친구와 만나는 자리, 친구의 친구와 만나는 자리,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죠.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도 교류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부딪히고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죠. 나 잘났다 목소릴 높이고 언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새로운 자리에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바뀌어 갔습니다. 불편한 자리,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는 피하게 됩니다. 사람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죠. 
 
편한 사람만 만나다 보니 인간관계도 점점 좁아지게 되더군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닌가 봅니다. 주위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다 그렇다고 하네요. 
 
친척과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명절이면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무어라 마셔라 화투도 치고, 집이 떠나가라 왁자지껄 떠들고 놀다가 종국엔 술이 거나해져 말싸움을 벌이는 어른들이 나오곤 했어요. 그래놓고 또 다음 명절이면 해사한 얼굴로 모였습니다. 
 
요즘은 안 그런 것 같죠? 가족 또는 가까운 친척끼리만 모여 한두끼 식사를 같이 할 뿐입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빠지는 경우도 많아요. 명절 연휴에 여행 가는 것이 당연한 시대니까요. 다른 한편으론 부모가 자식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이 고부 갈등, 부부 갈등의 원인이라는 기사를 명절 때마다 접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누가 누구네 집에 가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 언제인지도 모르게 이런 상식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풍경도 어릴 적과 비교해보면 을씨년스럽기도 합니다.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래요. “넌 언제 결혼하니?” “공부는 잘해?” “너희 아파트 시세는 요즘 얼마나 하니?”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을 필요가 없어 편하긴 할 텐데 명절 기분은 나지 않는, 그냥 일요일이 이틀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설 연휴에 가까운 곳에 사시는 외삼촌 댁에 찾아갔습니다. 일주일 전 팔순이었다는데 잔치를 하는 대신 가족과 친척 몇만 불러 식사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거든요. (돌아가신)누나의 자식들도 같이 밥 먹자고 부르기 꺼려질 만큼 거리를 느끼셨나 봅니다. 평소 안부 전화도 하지 않은 제 탓입니다. 
 
오랜만에 뵌 백발노인의 시선은 강아지 두 마리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아들과 손주보다 품에 폭 안긴 강아지에게 쏟는 애정이 더 깊어 보이더군요. 
 
핵가족, 비대면, 단절화된 현대사회, 당연한데 당연하면 괜찮은 걸까요? 관계의 단절. 이런 변화에 맞춰 사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바로잡아야 하는 무언가인지 구분조차 어렵게 느껴집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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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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