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기업 가치 갉아먹는 뻥튀기 후보물질

물질 하나로 복수 적응증…가치 부풀리기도
"바이오벤처, 앞서가는 분야 집중 전략 도움"

입력 : 2023-02-17 오전 6:00:00
기사와 무관한 사진.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회복세에 접어든 국제 경제와 달리 한국의 경기 악화는 길어지고만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바이오기업에 드리운 한파 역시 매섭습니다.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은 인력은 물론 후보물질도 줄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불필요한 연구개발을 줄이는 추세라고 볼 수 있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동안 고평가된 파이프라인이 꽤 있었다는 뜻이겠죠.
 
작년 파이프라인 임상 중단만 21곳
 
코로나19 팬데믹이 바이오업계에 투자 확대를 불러왔다면, 경기 악화는 바이오기업의 몸집 축소를 촉진했습니다. 특히나 최근에는 연구개발 동아줄이었던 정부 과제도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개발 성과보다 생존을 먼저 걱정하게 됐습니다.
 
위기에 빠진 기업이 돈을 아낄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인력 감축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월 1600명대였던 의료바이오 채용 인력은 같은 해 9월 1300명을 밑도는 수준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기업들이 저마다 연구인력을 감축하면서 인력 감소폭이 더 커졌습니다.
 
여기서 상황이 더 나빠지면 기업 입장에선 후보물질 옥석 가리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도 작년 공시 기준 파이프라인 임상시험을 중단하거나 철회한 바이오기업은 21곳이나 됩니다.
 
부풀려진 후보물질 가치…평가 기관 살펴봐야
 
연구개발을 통해 신약을 만들어내겠다는 바이오기업이 임상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죠. 그만큼 뼈를 깎는 심정일 겁니다. 반대로 굳이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임상일 수도 있죠.
 
임상을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운 기업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는 다른 기업의 품에 안기는 겁니다. 이 경우 보유한 후보물질의 가치가 높을수록 유리하죠. 그래서 일부 기업들은 자사 후보물질의 가치를 부풀리기도 합니다.
 
후보물질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이려면 전문성이나 공신력이 부족한 평가 기관에 맡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후보물질 평가 경험이 많지 않은 부설 연구소 등에 의뢰하는 일은 실제로도 비일비재합니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사진=연합뉴스)
 
후보물질 하나로 만병통치약 만든다?
 
보다 적극적으로 자사 후보물질의 가치를 키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질 하나로 여러 적응증을 갖출 수 있다고 알리는 거죠. 적응증은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여기는 질병이나 증상을 말합니다.
 
이런 경향은 주로 시장 선도 의약품이 없는 질환 영역이나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성행합니다. 구충제 성분으로 코로나19 치료제부터 원숭이두창, 암 등 여러 질환을 타깃할 수 있다고 한 기업도 있죠. 진짜 임상을 통해 치료 효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결과를 미리 장담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설혹 임상에 진입하더라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개별 임상이 종료된 뒤 뒤따라야 할 과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선 안 됩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임상 1상부터 3상까지 이르는 과정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 어떤 요인 때문인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단계별 임상이 끝나면 데이터 공개와 같은 과정을 확인할 수 없다면 사실상 개발 과정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금력이 풍부하다면 하나의 물질로 여러 적응증 연구를 할 수 있다"며 "다만 바이오벤처의 경우에는 앞서가는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이 이롭다"고 조언했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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