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하면 마천루들이 만들어내는 불빛의 멋진 향연, 거대한 은행과 금융기관, 시끌벅적한 로드 클럽, 쇼핑의 성지 거리, 맛집 천국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홍콩 첫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의외에 장소에서 나왔습니다. 반짝이는 화려한 불빛의 도심이 아닌 홍콩 시내 센트럴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수많은 필리핀 가사도우미 인파였습니다. 그 넓고 큰 육교 위아래를 빼곡히 삼삼오오 앉아, 간식을 먹어가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깊이 박히게 됐습니다.
벌써 홍콩 첫 여행이 십 년 전 즈음이었으니 홍콩에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가사도우미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가사도우미들이 모여있던 모습을 목격한 데는 그날이 마침 주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홍콩에서는 웬만한 가정에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등 가사도우미를 두고 있는데 평일에는 집에서 상주하며 가사를 돕고, 주말에는 가족들의 시간을 위해 이렇게 나와 지인들과 함께 하는 거죠.
실제 홍콩은 1970년대 급격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참여가 중요해지자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 때문에 고학력 여성 중심으로 고용하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중산층에서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실제 1990년 7만 명 수준에 불과했던 가사도우미는 2000년 21만 명, 2022년 34만 명까지 확대됐죠. 이들의 최저 급여는 월 4730홍콩 달러(약 78만 원)입니다. 홍콩인의 최저임금 시간당 40홍콩 달러(6600원)와는 별로도 책정된 금액인데요. 여기에 식대, 연 1회 항공료 등 감안하면 약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홍콩의 가사노동자가 급증한 이유는 1990년대 상대임금이 30~40% 이하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홍콩의 웬만한 가정에서 도우미를 쓰면서 맞벌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나라도 드디어 3월부터 필리핀 도우미를 쓸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일단 시범사업으로 100명이 서울 지역 가정에 채용되는 건데요. 보육을 비롯해 청소·세탁·주방일 같은 집안일 전부를 담당할 수 있는데 입주 가정부 대신 출퇴근 방식입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 준수(시간당 9860원), 사회보험 가입 등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월 200만 원 이상이 불가피합니다.
홍콩의 사례를 볼 때 서비스 연착륙의 가장 큰 변수는 '비용'이 될 전망입니다. 필리핀의 본국 임금은 아직도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가사도우미 보통 임금이 20만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낮출 유인이 큽니다. 송출 국가 또한 높은 임금을 요구하지도 않죠. 실제 필리핀 정부는 적정임금을 원화 80만 원 수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고 합니다. 더 많은 노동자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싶을 테니까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일과 보육이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할 때 좀 더 생산적이고 현실적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하지않을까요. 맞벌이 부부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필리핀 이모'가 필요하니까요.
김하늬 편집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