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자율배상 '배임 공방'…과거 사례 보니

라임펀드·DLF·자살보험금 때도 단골 소재
"기관·대표이사 제재 감경이 최종 목표"

입력 : 2024-03-1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의 자율배상 여부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판매사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과거 분쟁 사례를 보면 금융사들은 배임 문제를 이유로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에는 당국의 지침대로 배상을 결정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주주로부터 배임 문제가 실제로 불거진 경우는 없었고, 결론적으로 금융사 및 대표이사의 제재 감경이 최종 목표였습니다.
  
배상 이슈 때마다 '배임' 거론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사들이 손해배상 이슈에 휘말릴 때마다 제기하는 이슈가 바로 '배임'인데요.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금융사들은 제재 감경 최후 수단으로 배임 소지를 활용해왔습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상장 금융사 입장에서는 배임 우려를 최대한 내세우면서 제재 감경을 이끌어 내는 과거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 금감원이 배상을 권고한 후 시중은행은 한달 가량 뒤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금감원은 2019년 12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해외금리 연계 DLF로 손실을 본 투자자에 대해 자율 조정 방식으로 배상할 것을 권고했고, 다음 해 1월 주요 은행은 배상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이러한 조정 절차를 통한 평균 배상률은 58%에 달했습니다. 당초 DLF 판매사들은 자율 배상에 나서다가 배임 문제에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대표이사 중징계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제재 감경을 위해 자율배상에 나섰습니다. 결국 금감원의 '무관용 원칙'에 따라 판매사 대표이사들은 배상 노력에 상관없이 중징계를 맞아야 했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 6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판매사들에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를 2018년 11월 이후 산 투자자들에게 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는데요. 상품 계약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서 '계약 취소' 요건이 되므로 판매사가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는 것입니다. 라임펀드 판매사들이 배임 이슈를 이유로 두달 가량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다가 당국이 제재 감경에 반영하겠다고 회유책을 내놓자 원금 반환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난 1월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ELS 투자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투자상품은 아니지만 보험업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자살보험금 사태 때에도 생명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면 주주들이 배임 혐의로 책임자를 고발할 것이라며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급기야 금감원이 생보사들이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대책 마련을 하지 않으면 중징계를 내릴 것이라 예고했는데요.
 
생보사들이 배임 우려를 이유로 지급에 나서지 않고 결정을 미루자 금감원은 2017년 2월 대형 보험사 3곳에 대표이사 문책경고 등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중징계 결정이 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생보사들은 바로 백기투항해 자살보험금 전액을 지급하기로 했는데요. 금감원이 징계 수위를 이전보다 낮추며 사태가 마무리된 바 있습니다.
 
'제재 감경' 최후 수단이기도
 
자본시장법 제55조는 금융사가 우려하는 배임죄의 근거가 되는데요. 예외적 사유가 아니라면 판매사가 투자자가 입은 손실을 보전해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에서 말하는 예외적인 사유는 '건전한 거래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이라면 손실 보전을 해도 무방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금융투자업 규정에서는 '투자매매업자, 투자중개업자 및 그 임직원이 자신의 위법 행위 여부가 불명확할 경우 사적 화해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는 불건전 영업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배임 문제를 이유로 판매사들이 자율배상에 미적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개인 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회'’를 마친 뒤 손해 배상에 따른 배임 우려에 대해 "개인적으로 배임과 관련한 여러 법률 업무를 20년 넘게 해왔는데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시나리오 안에서 분석해봤는데 (ELS 분담금 등에 따른)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에 문제가 없고 주주 친화적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에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왜 지금 은행권의 배임 이슈가 나오는지 정확하게 이해를 못 하겠다"며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 공감할 만한 배임 이슈가 있다면 고치겠다"고 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홍콩ELS 배상과 관련한 은행 건전성 우려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이 원장이 홍콩ELS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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