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금융 불모지 태국)③'탈태국 괘씸죄' 고정관념 깨야

"태국 내 외국계 은행 인가 문 열어도 한국서 신청 없어"

입력 : 2024-03-27 오전 8:00:00
(방콕=이종용 기자) 지난 18일 태국 방콕 전철(BTS) 시암역.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이 열차를 타러 이동하는 길에 삼성전자 등 익숙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니 삼성전자 갤럭시24를 홍보하는 전광판이 도배하듯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시암 파라곤 쇼핑몰 지하에는 한국 라면을 따로 진열해 놓은 식품 코너도 있습니다. 라면뿐만 아니라 소주, 과자, 반찬까지 한국어 이름표를 붙인 식료품들이 즐비한데요. 그럼에도 유독 한국 금융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 호찌민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광고판이 방문객을 맞이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태국 방콕에서는 한국 전자제품이나 식료품을 찾아보기 힘들지 않았지만, 한국계 은행 점포나 홍보하는 간판은 찾기 어려웠다. 사진은 방콕 시암역 내 붙어있는 삼성전자 광고. (사진=뉴스토마토)
 
'한국만 차별' 의혹은 오해
 
태국에 진출한 한국의 400개 기업 중 금융사는 4곳에 불과합니다. 금융권에서는 한국 금융사의 태국 진출이 부진한 대표적인 배경으로 태국 당국의 괘씸죄를 꼽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많은 국내 은행이 태국 현지에서 영업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해 모두 철수하면서 태국 정부의 신뢰를 잃게 됐다는 것입니다. 태국 정부의 잔류 요청에도 불구하고 모두 떠나면서 태국 정부에서는 국내 금융사에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한 게 사실입니다. 
 
국내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태국 정부가 우리 금융사를 나이스하게 보지 않는다"며 "진입 불가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태국 금융당국과 교류하고 있는 국내 당국 관계자와 현지 진출 금융사 주재원의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지난달 28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태국 중앙은행(BOT), 증권거래위원회와 면담을 가진 바 있습니다. 금융위에 따르면 세타풋 태국 중앙은행 총재는 "한국의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태국 금융시장에 더 많이 진출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고 합니다.
 
양국 당국 수장들끼리 주고받는 인사치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한국의 괘씸죄에 대한 얘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고 합니다. 
 
최상아 금융위 금융국제화 대응단 과장은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태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사정도 심각했고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다는 부분을 설명했다"며 "중앙은행 총재도 맞다고 화답하면서 태국 당국은 특정 국가에 차별을 전혀 두지 않고 있으며 한국을 환영한다 얘기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많은 국내 은행들이 태국 현지에서 영업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모두 철수한 바 있다. 사진은 태국 TTC뱅크 본점 내부에서 직원들이 지나다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현지 1위 노리는 단기 성과주의
 
태국 중앙은행 측은 한국의 적극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때 긴밀한 파트너였던 태국과 한국이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멀어진 것은 사실이나, 이후 한국 정부가 금융교류라고 할 만한 콘텐츠를 가지고 접근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앙은행 관계자는 "현재 태국 당국은 한국의 금융사 진출을 정치적으로 막고 있지 않다"면서 "한국이 제안한다면 법이 허용하는 내에서 교류 방식을 검토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전했습니다.
 
태국 현지에서 근무하는 주재원들도 한국 금융사들이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진출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노현우 KB국민카드 태국 부법인장은 "동남아 국가에 진출하려는 금융사가 업계 1위가 되겠다는 것만 바라본다면 기존 플레이어들도 장악한 태국 시장 공략이 어렵다고 볼 수 있겠지만, 틈새 시장을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태국 시장에서도 숨겨진 보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 인허가 조건이 까다롭다는 점은 걸림돌입니다. 경제 규모가 큰 태국에는 이미 글로벌 금융사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데요. 태국에서 금융사로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려면 그만큼 자본을 많이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금융사들이 진출한 탓에 시장에 잘 안착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겁니다.
 
반면 노 부법인장은 "태국 인력이 질적인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나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들보다 높고 특히 금융은 인건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해야되느냐고 할 수 있지만 반대급부로 현지 파트너나 채널과 협력을 통해 초기 세팅을 잘하고 특정 시장을 공략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길태준 카시콘뱅크 한국데스크 팀장은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특정 국가를 콕 집어서 '당신들한테만 은행을 내줄게' 하는 나라는 없다"며 "외국계 은행들이 태국에 들어간다고 희망할 때마다 태국 당국이 일회성으로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길 팀장은 "태국도 IMF 외환위기 이후 50개년 경제계획을 세우고 단계별로 외국계 은행에 라이선스를 발급하겠다고 알리고 있는데, 그때그때 태국 당국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맞게 금융사가 신청을 하면 되는데, 한국 금융사는 한 곳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꼬집었습니다. <(4)편에서 계속>
 
지난달 28일 세타풋 태국중앙은행(BOT) 총재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한국의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태국 금융시장에 더 많이 진출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BOT 내 화폐박물관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방콕=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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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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