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공화주의적 개헌과 조기 대통령 선거

입력 : 2024-04-16 오전 10:50:38
'공화주의적 헌법개정을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로 결정하고, 2026년 8월 이전에 조기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라.' 지난 4월10일 치러진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는 이것입니다. 2016년~2017년 촛불혁명의 광장에서 발화한 공화주의적 개헌 요구가 이번 총선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 겁니다. 현행 헌법이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적 개헌'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것이었다면, 이번 총선으로 확인된 민의를 제도화하는 개헌은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의 내용을 묻는 '공화주의적 개헌'입니다.
 
총선을 주도한 정치 젠다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주장한 "3년은 너무 길다", "야권 200석" 등이었습니다. 이번 선거만큼 정책이 사라진 선거도 87년 민주화 이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철저하게 정권심판론이 작동한 선거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정치 어젠다는 이 블랙홀 속에 빨려 들었습니다. 총선이 지나고 나서 귓가에 남아 있는 정치나 정책 아젠다는 이 두 가지 이외에 달리 찾을 길이 없습니다.
 
총선 결과는 절묘한 황금분할로 나타났습니다. '야권 192석 대 여당 108'입니다. 국민적 선택이 파국을 막았습니다. '야권 200석'은 헌법 개정과 대통령 탄핵을 의미합니다. 만약 야권 200석이 현실화되었다면, 한국 정치는 대통령 탄핵 이슈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고, 극심한 정쟁과 갈등을 겪게 됐을 겁니다. 보수와 진보는 화해하기 힘든 강을 건너고, 배제와 분열의 정치도 뒤덮을 겁니다.
 
특히 부산·울산·경남(PK)이 절묘한 황금분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역설적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조국 돌풍'의 진원지는 부산이었습니다. 조국 대표는 첫 일성을 부산에서 시작했고, 사실상의 선거운동 마무리도 부산을 겨냥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YS) 이전 야도(野都)로서의 부산을 복원하는 데 정치적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 PK는 그 복원을 유보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더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겁니다. 근소한 박빙의 승부처들은 변화를 위한 임계점에 아직 다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민심에 따라 균형추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지체된 공화주의적 개헌'에 대한 국민적 명령입니다. 2016년~2017년 촛불혁명은 87년 민주헌법 체제에서 2016년 공화헌법으로 전환을 하라는 국민적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여야는 '박근혜 탄핵'이라는 데까지는 갔지만,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창조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은 10년간 지체된 공화헌법으로 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민주화 이후 공화주의 에너지는 간헐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민주공화국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발화했습니다. 첫 번째 공화적 화염은 2008년 광우병 사태로 시작한 촛불집회였습니다. 당시 이명박정부가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권위주의로 회귀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행동이 진행된 겁니다. 두 번째 공화적 에너지는 2016년 촛불시민들의 직접행동이었습니다. 세 번째 공화적 에너지는 광장이 아니라 이번 총선 투표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에너지를 잘 조정해서 제도화하는 것이 국민적 지혜입니다. 공화주의적 에너지는 잘 관리되면 삶을 번영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조절에 실패하면 화마로 파국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1494년 최초의 근대 공화주의를 피렌체 시민혁명에서 경험한 마키아벨리는 이를 역능(Virtus)라고 칭했던 겁니다.
 
촛불집회 이후 한국 정치는 광장에선 촛불과 태극기로, 제도권 정치에선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양극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 개헌은 정치적 다수와 소수, 진보와 보수,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합의를 통해 국민적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것이어야 합니다. 1인 지배의 군주제에서 공화정체로 전환한 이후 정치적 다수와 소수의 혼합정체(Mixed government)가 가장 이상적 정치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정치의 황금률입니다. 이번 총선의 결과로 최적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만약 야권 200석이 됐다면 배제와 분열의 정치가 재현됐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192 대 108'이라는 절묘한 황금분할은 여야 합의에 의한 개헌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야권이 여당 108석 중 일부를 설득해 대통령 탄핵으로 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미 박근혜 탄핵으로 학습된 '배신자 프레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보수 정치인, 중도적이고 개혁적인 보수 정치인 중에선 아직도 배신자 프레임에 갖혀 정치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입니다. 
 
6월이면 새 국회가 개원합니다. 여야 합의로 개헌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매번 2년마다 선출되는 국회의장의 단골 어젠다는 개헌특위였습니다. 그러나 개헌은 국회의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야의 대표들과 지도부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 가능한 일입니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국회에서 다양한 헌법 어젠다들을 토론하고, 공론장에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새로운 헌법에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문가 중심의 개헌이 아니라 국민참여형 개헌으로 가야 합니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기획자문회위원회에서 했던 '광화문 1번가'라는 모델은 국민참여형 개헌의 좋은 선례가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헌법 초안을 만들고 2026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로 헌법을 확정하고, 두 달 뒤에 조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게 이번 총선의 민의입니다.
 
임채원 에든버러대학교 정치학과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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