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 폐해…87년 체제 한계 '극명'

변화된 시대·소망 담아내지 못한 '87년 헌법'
5년 단임제, 쫓기는 시간에 정책 연속성 결여
정치권, 개헌 필요성 강조…"제7공화국으로 가야"

입력 : 2024-04-25 오후 5:33:40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87년 체제를 타파하자." 올해로 37년째를 맞는 87년 헌법의 옷을 벗고 제7공화국 개헌으로 나아가자는 당위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4·10 총선을 거치면서 헌법 개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데요.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9차 현행 헌법은 민주항쟁을 씨앗 삼아 맺은 열매이지만, 37년을 지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민주공화 헌정을 달성하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저출생 고령화를 비롯해 양극화, 지역 격차, 정치 갈등, 복지 등 대한민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그간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는데요. 전문가들은 개헌의 골든타임을 또다시 놓친다면 산업화 때 만들어진 헌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모순을 겪는 만큼,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87년 '5년 단임제' 개헌…제왕적 대통령 폐단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처음 제정된 이후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사회를 지탱해 주는 토대가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제헌헌법은 해방 이후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지만, 그 후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쳤습니다. 실제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 공표 이후 1987년까지 총 9차례 헌법이 개정됐습니다. 
 
다만 건국 초기와 개발연대 시대에는 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장기 집권을 위해 위헌적인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개악'이 대다수였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때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제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사사오입 원칙에 의한 개헌(2차 개헌),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재임을 3기로 연장하는 개헌(6차 개헌), 대통령을 간선으로 하고 임기는 6년으로, 국회의 국정감사권 폐지와 국민들의 기본권을 약화시키는 초법적 개헌(7차 개헌, 소위 '유신헌법') 등은 국민의 요구가 아닌 정권의 필요에 따라 이뤄진 개헌에 불과했습니다. 
 
현재의 소위 '87년 헌법',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9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가 도입되면서 기틀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 모두 5년 단임제 한계에 봉착했는데요. 제왕적 대통령 속 과도한 권력 집중은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습니다. 특히 5년 단임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책임 있는 정책을 입안, 실행할 시간이 부족하면서 정책의 연속성이 결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느 대통령이고 5년이라는 단기간에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정책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국가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혔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2007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을 대통령 직권으로 발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대 국회는 여야 협의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헌법 개정안 마련 활동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노력들은 흐지부지되며 큰 성과 없이 종료됐습니다. 이후 정치권에선 미국식 4년 중임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유럽식 의원내각제 등이 꾸준히 거론되며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8년 7월17일 제헌 70주년을 맞아 제헌헌법과 개정헌법 등 대통령기록관이 소장해 온 헌법기록물 550매를 보존처리한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뉴시스)
 
미국보다 강력한 대통령제…"권력 중추 의회로 바꿔야"
 
최근 정치권 안팎에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등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경제조항과 사회권 개정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87년 개헌 때 신설한 헌법 제119조2항('국민경제의 균형 발전, 적정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 및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위해 정부가 경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은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해석이 끊임없이 엇갈리면서 현실에 맞게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릅니다.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자치분권, 저출산·고령화 등의 문제도 헌법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나옵니다. 
 
이 같은 이유로 정치권에서도 개헌 논의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는 모습입니다. 이미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개헌을 제안하면서 개헌절차법 개정을 내놨고, 범야권은 22대 국회를 앞두고 개헌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공약했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육아 친화·지방분권·탄소 중립·과학기술·평화공존 등을 새 헌법에 담을 내용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등을 총선 공약으로 내놨습니다. 
 
특히 정부·여당의 4·10 총선 참패 이후 범야권은 대통령의 임기 단축 개헌까지 압박하며 나선 상황으로, 윤 대통령 임기 중반기 이후엔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입니다. 앞서 천하람 개혁신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윤 대통령 예전 녹취를 보면 '대통령 그거 뭐 귀찮습니다. 저는 그런 자리 관심 없습니다' 이러셨다"며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의 주인공이 되시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시는 거 아닌가"라고 윤 대통령에게 임기 단축 결단을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37년 동안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현재의 헌법이 가지고 있는 권력 구조 내지는 권력 운용 방식을 다 경험해 봤지만 결국 바꿔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큰 틀에서 말하면 우리나라의 대통령 권한은 미국의 대통령보다 훨씬 강력하다"며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권력의 중추를 의회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서실장 및 정무수석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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