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이 또다시 구속 기로에 놓이면서 그룹 안팎은 총수 공백 재연 우려에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입니다. 12조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 투자 계획도 사실상 불투명해졌습니다.
16일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전부터 계열사를 동원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호진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 전 회장은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2019년에 징역 3년이 확정돼,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으나, 이후 또다른 횡령 의혹이 불거지며 재차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습니다.
횡령·배임 등 의혹이 제기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총수 부재’라는 악재가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요 계열사의 잇따른 투자 시계도 사실상 멈춰 서게 됐습니다. 태광그룹은 지난 2022년 석유화학 부문에 6조원, 섬유 부문 4조원, 금융 부문 2조원 등 총 12조원을 10년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투자 규모는 창사 이래 최대지만 집행된 투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검토 단계에서 마침표 찍지 못한 게 많다”면서 “거의 집행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기술 라이센스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투자를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권한이 총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투자는 가로막힌 셈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2022년 8월 중국 닝샤 지역에 스판덱스 공장 설립을 추진하려했지만, 최근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1년에는 LG화학과 합작해 티엘케미칼을 설립했지만 이곳도 최근 투자를 잠정 중단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티엘케미칼은 태광산업이 728억원에 60% 지분을, LG화학이 485억원에 40% 지분을 투자해 아크릴 섬유와 ABS합성수지 등의 원료인 아크릴로니트릴(AN)을 생산해 태광산업과 LG화학에 공급할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 공급망 불안정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업황 악화가 지속되면서 사업성이 떨어졌다는 분석입니다. 2018년 재계 순위 36위까지 올랐던 태광은 수많은 논란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재계 52위로 추락했습니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이 특별사면 된 직후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이 전 회장 측근으로 대거 교체하면서 이 전 회장의 경영복귀도 빨라질 것으로 점쳐졌습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이 다시 구속 기로에 서면서 그룹의 경영 전사적인 방향도 불투명해졌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이어갈 수 있지만 특히 국내외 불확실한 여건에서 대규모 시설투자나 M&A는 실질적으로 오너 없이는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라면서 “오너 공백에 따른 투자 집행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태광그룹 로고. (사진=태광)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