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최근 일부 금융 인프라의 과점적 구조와 일부 금융사간 정보 교환 행위의 경쟁 제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업의 특성상 필요한 금융 안정 조치가 경쟁 제한 논란을 촉발할 수 있고 반대로 경쟁 촉진 조치가 금융 안정과 소비자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일 임원회의에서 은행권의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제재를 추진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LTV라는 단어를 명시하지 않았는데, 공정위를 겨냥한 직격 발언인지는 모호한데요. 최근 금융권에서 '정보 교환 행위'로 문제가 된 것은 은행 LTV 담합 의혹인 만큼, 이를 두고 한 발언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 원장이 떠나는 마당에 작심발언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원장 임기는 내달 5일까지인데, 영업일 기준으로는 보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간 공정위가 LTV 담합 의혹 관련 은행 현장검사에 나서고 제재 결론에 이르기까지 금융당국 수장들은 별다른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습니다.
금융위원장이나 금융감독원장은 "협의할 일이 있으면 협의하겠다"거나 "입장을 밝히기 적절치 않다"며 회피하기 바빴습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해당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것은 정부 기조에 어긋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은행권을 향해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은행이 서민과 소상공인을 상대로 과도하게 이자를 받고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입니다. 고금리 국면이 이어지면서 '종노릇', '이자 장사', '약탈적 영업' 등 비난 발언 수위가 계속 높아졌고, 금융당국 수장들도 이 같은 기조에 발을 맞추기 바빴습니다.
공정위의 LTV 담합 의혹 조사도 은행 이자장사 비난 기조에서 시작됐습니다. 2023년 2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통신 분야의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공정위는 4대 은행과 NH농협·기업은행 현장조사를 벌여 대출 관련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4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모습. (사진=뉴시스)
공정위의 은행 제재는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달 18일 각 은행에 LTV 담합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심사보고서를 전달받은 은행들은 공정위 판단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정부가 제시한 당초 마감일은 지난 9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행들이 회신 기한 연장을 요청했고, 공정위가 이를 수용한 것입니다. 의견 수렴 마감이 다음달로 미뤄지면서 최종 제재 수위 결정 역시 사실상 하반기로 늦춰졌습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공정위 제재에 반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TV 비율 자체가 애초에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운용하는 정책수단이기 때문입니다. LTV 규제 완화 또는 강화는 거시건전성 정책으로서 정부가 결정해온 사항인데 공정위가 경쟁법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두고 공정위와 금융당국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현재 기획재정부 조직 개편과 맞물려 금융위원회를 해체하는 내용의 감독체계 개편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국무총리 소속 기획예산처로 이관하고, 기존 기재부는 재정경제부로 명칭을 변경해 나머지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식입니다. 금융위를 폐지하면 금융정책 기능을 바로 이 재경부로 이관시키고, 금융감독위원회를 부활하는 내용입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의 쪼개질 수 있는데요.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금소위)·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별개의 기구로 신설해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감독은 금감위와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은 금소위·금소원 각각 전담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공정위는 과거 금융위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만들어 금감원 내 준 독립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기로 하자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습니다. 이미 공정위는 산하기관으로 유사한 성격의 한국소비자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