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이지유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산재) 문제에 대한 대대적 해결 의지를 밝히면서 이커머스업계의 '새벽배송'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새벽배송은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의 속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빠른 배송에 최우선 가치를 두며 탄생한 콘텐츠인데요.
새벽배송의 경우 고객의 편의를 극대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면에 배송 기사들의 장시간 야간 노동을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만큼 산재 사고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실제로 최근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벽배송 기사들의 노동환경과 건강은 매우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요. 노동자들의 희생을 발판 삼은 후진적 노동 행태를 막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다는 분석입니다.
새벽배송 중 산재 사고 14배 증가…노동자 건강 위협
7일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연구 용역에 따르면 새벽배송 중 발생한 재해 사고는 2019년 10명에서 2023년 151명으로 14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울러 전체 재해자들 중 야간 재해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2019년 10.1%에서 2023년 19.6%로 치솟으며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산재 위험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새벽배송 중 발생한 교통사고는 전체의 78.3%에 달했는데요. 이 같은 업무 중 부상은 장시간 노동과 수면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또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 39분으로 집계되며 법정 노동시간인 8시간을 초과했고, 야간 노동시간 가산 시 실질적인 노동 강도는 더욱 셀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심야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지난달 말 발간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취약 근로자(야간 노동자) 보호를 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가 야간 근무, 교대 근무, 장시간 근무를 모두 하거나 일부만 하는 경우 육체적 건강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최대 2.3배, 정신 건강 문제가 발생할 위험은 최대 1.9배 높아지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특히 연구원이 새벽배송 기사와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근로·건강 실태'에 관한 심층 면담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새벽배송 기사들은 대부분은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수면 불충분 호소율은 66%였고, 새벽배송의 육체적 부담을 호소한 응답도 58%나 됐습니다.
또 이들은 우리 국민 평균(47.6%)보다 본인 스스로 건강하다고 인지하는 비율(30.3%)이 떨어졌습니다. 체중 감소 비중은 70%에 달했고, 체중 감소 폭은 최대 13㎏으로 매우 컸습니다.
쿠팡 물류 센터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새벽배송 물량이 많아질수록 야간 근무 강도도 덩달아 세진다"며 "밤새 무거운 물건을 쉴 새 없이 나르다 보면 허리나 손목에 무리가 가는 건 기본이고, 사고 위험도 항상 곁에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사각지대 놓인 노동자들…실효성 있는 보호 장치 마련돼야
이처럼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높은 재해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미비한 탓입니다.
이학영 의원실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79.4%에 그치고,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 여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21.2%에 달했습니다. 또 산재보험료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는 경우는 단 9.7%이며, 68.8%는 노동자 본인이 절반을 부담하고, 17.5%의 경우 본인이 전액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전보건연구원 역시 노동 강도를 낮추고,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보해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휴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 연구진은 "야간·교대·장시간 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근로 시간에 대한 제약과 육체·정신적 회복을 할 수 있는 휴식 시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곽경선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처장은 "최근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산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들은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수면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회사 차원의 실질적인 보호 조치는 미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야간에 근무하는 자체가 유해 물질에 노출된 것과 다름없는 상황으로 판단되는데도, 산재 신청 과정은 여전히 까다롭고 인정을 받기도 어렵다"며 "다행히 최근 야간 근무를 하던 배송 노동자가 '암'을 산재로 인정받은 첫 사례가 있었지만, 이런 인식과 제도는 훨씬 더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곽 사무처장은 "또 일부 노동자들은 배송 공백을 막기 위해 근무 외 시간에도 계속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이는 명백한 '숨은 노동시간'이다. 기본적인 휴식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과로와 사고 위험이 뒤따른다"며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 노동의 실질적 제한은 물론, 산재 신청 절차의 간소화와 인정 범위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노동자 건강과 산업 생태계를 아우르는 균형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제기됐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물류 센터 직원이나 배송 기사 등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보호 조치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특히 새벽배송 특성상 수면 장애나 과로,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구조인데도, 제대로 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그렇다고 단순히 야근을 제한하기도 어렵다. 근무 시간을 줄이면 소득이 줄고, 이는 결과적으로 택배비 인상 등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며 "이에 제도 개선은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면서도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균형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서울 중구 한 쿠팡 차고지에 배달 챠랑이 주차돼 있다. (사진=뉴시스)
김충범·이지유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