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가 난기류에 빠졌습니다. 한국이 관세 협상 과정에서 제안한 조선업 전용 1500억달러 펀드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트럼프 펀드(경제안보기금)’ 구상과 충돌하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조선업 인력 교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한국인 구금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업계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구윤철 경제부총리 등 한국 협상단이 한미 관세 협상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X 캡쳐)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3500억달러(약 48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중 1500억달러를 조선업 전용 펀드로 운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합의문 서명을 미루고 추가 양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투자 구조와 펀드 운용 주도권을 자국이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실상 합의의 실질적 이행은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것은 이른바 ‘트럼프 펀드’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이 제공한 자금을 모아 9000억달러 규모의 ‘국가경제안보기금’을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명칭은 “국부펀드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략 산업에 대한 지분 투자와 정부 직접 통제를 목표로 하는 트럼프식 국부펀드에 가깝습니다. 특정 산업이 아닌 인텔, 방산업체, 희토류, 조선업 등이 주요 대상입니다. 미국의 산업·안보 기반 강화가 목적으로 보입니다.
조선업계는 미국 내 연간 75척 규모의 신조 시장을 ‘마스가’ 협력을 통해 개척하길 기대해왔습니다. 펀드 구조 합의라는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다면, 마스가는 후속 협상 지렛대로만 활용될 뿐 실질적 발주나 현지 진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조선 빅3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을 단일 펀드로 투자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우리가 미국의 일방적 구상에 끌려간다면 오히려 외환위기 같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트럼프식 협상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 조선사들이 중장기 전략을 세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조선 빅3는 미국 진출을 통한 대규모 수주 확대를 기대하고 있지만 당분간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1500억달러라는 금액이 합리적 근거가 있어서 나온 금액이라기보다 일단 질러놓고 채워 나가는 모양새였다”며 “금액이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목소리도 많았던 만큼 이번 기회에 금액을 줄이거나 타임라인을 세워 세부적으로 접근해볼 필요도 있다”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