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협 카드 업무 위수탁 들여다보니…"사실상 노예계약"

입력 : 2025-09-2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지역 농·축협(개별 독립법인)의 카드사업 위수탁 계약(약정)이 농협중앙회와 NH농협금융지주에만 유리한 불공정 지배구조를 따르고 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부실채권을 지역 농·축협에 전가해 대손충당금을 대신 적립케 하고 신용카드 관련 사업도 중앙회에 의해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상황입니다. 
 
농·축협에 연체·부실채권 전가
 
25일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농협중앙회 신용사업(현 NH농협은행)과 지역 농·축협 간의 '카드사업 업무 위탁 약정' 문서를 살펴보면, 중앙회는 농·축협에 연체채권과 부실채권을 전가시키고 관련 대손충당금을 대신 적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약정서 제8조(이용대금 결제) 1항은 '신용카드 이용대금 채권은 회원결제일까지 중앙회에서 보유·관리한다'고 명시됐습니다. 2항에는 '회원결제일 이후 미결제잔액은 회원결제일에 중앙회에서 조합에 양도해 조합이 보유·관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1항에서 발생한 결제 이후 할부 미청구 잔액은 2항과 같이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즉, 연체되지 않은 카드대금 등 정상채권은 중앙회에 귀속되고 연체되거나 할부에 묶인 연체 가능성이 있는 부실채권에 대해선 지역 농·축협에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체·부실채권 전가는 별도의 약정 없이도 회원결제일이 되면 농·축협에 일괄적으로 자동 양도되고 있었습니다. 
 
농협중앙회 경영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상호금융(전국 1110개 농·축협 본점)의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여신(부실채권) 규모는 약 16조7435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2023년 말 10조원 수준이던 부실채권은 작년 6월 약 14조7078억원으로 급증하고 지난 7월 18조3271억원에 육박했습니다. 연체율도 4.03%에서 5.01%로 증가했으며, 공동 대출의 연체율은 20%까지 치솟았습니다. 
 
농·축협이 추진하는 신용카드 관련 사업도 중앙회 통보만으로 좌지우지되고 있었습니다. 조합이 중앙회로부터 위탁 받은 신용카드 업무는 법령에서 정한 부분을 제외하면 해당 약정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때 약정서 제3조(위탁의 기본원칙) 2항에 기재된 '조합은 중앙회에서 정한 제 규정 및 업무방법 등에 의해 신용카드 업무를 수행한다'는 원칙에 따라 중앙회가 구상한 사업을 따릅니다. 제16조(규정·업무방법) 2항에도 '신용카드 관련 규정 및 업무방법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수신과 여신 등의 관련 제규정 및 업무방법을 준용한다'고 명시됐습니다. 하지만 중앙회는 신용카드 사업 관련 제 규정이나 비용 등 세부 내용을 조합에 공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합이 회원을 모집하면서 발생한 업무위탁수수료도 중앙회에서 지정한 대로 지급되고 있었습니다. 약정서 제9조(업무위탁수수료) 2항에 따르면 중앙회가 조합에 지급하는 업무위탁수수료는 총 수수료에서 중앙회의 소요원가를 차감한 금액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회가 자체적으로 수수료 원가 조사를 거쳐 소요원가를 책정하고 있으나, 조합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원가가 책정되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농·축협 노조 관계자는 "카드 사업은 NH농협은행 사업인데, (은행이) 정상채권만 쏙 빼가고 부실채권은 농·축협에 떠넘기고 있다"며 "부실채권에 대비하기 위한 대손충당금도 조합이 대신 적립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역 농·축협이 농협은행 카드사업을 위탁받으면서 대신 적립하는 충당금 규모는 작년 6월 기준 784억원으로 전년 동기(약 617억원) 대비 27% 증가했습니다. 연간 전입(환입)액도 약 238억원으로 추산됩니다. 
 
노조 관계자는 "끝내 부실채권이 확정되고 나면 이마저도 농협중앙회의 자회사인 자산관리회사에 헐값으로 팔아야 한다"며 "쌍방향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협의도 없이 중앙회가 정한 대로 따르고 있어 사실상 노예계약에 가깝다"고 호소했습니다. 
 
불공정 약정에 농·축협 '불만 고조'
 
'카드사업 업무 위탁 약정'은 과거 2002년 12월 농협중앙회 신용사업 대표이사와 농·축협 조합장 간의 협의로 처음 체결됐습니다. 유효기간은 1년이지만, 농·축협이 약정 만료 2개월 전까지 중앙회에 갱신 요구 의사를 내비추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장됩니다. 그러나 올해까지 23년째 불공정 위수탁 약정이 유지돼왔습니다. 
 
2011년 3월 농협법 개정안 통과를 기점으로 2012년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면서 계약 주체가 달라졌음에도 이러한 관행은 지속됐습니다. 당시 중앙회 산하 신용사업 부문이 NH농협금융지주로, 경제사업 부문이 NH경제지주로 재편됐습니다. 본래 중앙회의 신용사업에 포함됐던 NH농협카드는 NH농협금융지주 주력 계열사인 NH농협은행의 사내분사(CIC) 형태로 운영됐습니다. 
 
카드사업 위수탁 계약 주체는 여전히 농협은행이 아닌 대주주 중앙회로 규정돼 있습니다. 사실상 농·축협 의사와 관계없이 중앙회와 지주사의 의지만으로 약정이 자동 갱신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에 농·축협 노조는 중앙회에 △계약 당사자 주체 명확성 △신용카드 업무의 규정·방법 등 상호 간 논의·협의 기준 마련 △회원 모집 외 신용카드 위탁 업무 삭제 △채권 보유·관리 주체 변경 △대손충당금 적립 등 자금조달 비용 삭제 △비용 부문의 세부 기준 및 내역 공지 △농·축협 노동자 중심의 협의기구 구성 근거 마련이 포함된 개선안으로 갱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농·축협 노조는 카드사업 불공정 위수탁 계약 정상화 촉구에 목소리를 모아달라며 지난 15일부터 전국 조합장 설득에 나섰습니다. 중앙회를 상대로 신용카드 위탁 업무에 대한 직접적인 협의 권한을 가진 조합장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협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다가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농·축협 불공정 계약이 조명될 것으로 보입니다. 농·축협 노조 관계자는 다수 의원실과 접촉해 현안을 공유했으며,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국감장에 등판할 계획입니다. 
 
농협중앙회 사옥 간판. (사진=신수정 기자)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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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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