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홍연 기자] 국회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건설업계를 최대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의 ‘관리 책임’을 직접 따지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따라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중 삼성물산과 SK에코플랜트를 제외한 8개사 CEO가 국감 증인으로 대거 소환되는 사실상 ‘건설사 청문회’가 열릴 전망입니다.
국감장에 건설 CEO 대거 소환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는 오는 13일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 △김보현 대우건설 대표 △정경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 등 대형 건설사 CEO들을 증인으로 출석시킬 예정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건설 현장에서 반복된 산업재해 사망사고와 관련해 안전관리 책임을 묻기 위한 소환됩니다. 이 중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는 올해에만 각각 8명과 4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해 건설업계 중대재해 1, 2위를 기록하고 있어 집중 추궁이 예상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번 국정감사는 역대 최대 규모의 건설사 CEO 출석 사례라는 점에서 이례적입니다. 최근 5년간 국감에 출석한 건설사 CEO는 5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단일 회차에만 8명이 채택됐습니다. 이 가운데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와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사장은 노동환경 안전을 담당하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감에도 증인으로 중복 출석하며,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특혜성 공사 의혹 관련 질의에도 응해야 하는 이중 소환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처럼 다수의 CEO가 동시에 국감 증인석에 오르는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반복되는 건설 현장 사망사고에 대해 지난 8월 “면허 취소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국회와 함께 실질적인 책임 추궁에 나서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국감에 증인으로 소환된 대형 건설사들은 올해 잇따라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발생시켰습니다. 지난 2월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한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로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으며, 3월 이후에도 인명사고가 2건 더 발생하자 현대엔지니어링은 주택과 인프라 공사 수주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4월에는 포스코이앤씨가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터널 붕괴 사고로 1명의 사망자를 냈고, 추가적으로 전국 104개 사업장을 전면 중지시켰습니다. DL건설 역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대표이사와 임원 80여명이 일괄 사퇴했습니다. 이 밖에도 대우건설, 롯데건설, GS건설 등도 중대재해 발생 직후 CEO들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책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건설업계 구조까지 진단한다…건설업계 ‘초긴장’
전문가들은 이번 국감에서 건설사 CEO들을 세워놓고 단순히 윽박지르기만 하는 정치적 이벤트로만 그치지 말고, 안전사고 발생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진단하는 계기가 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3월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토위 위원들의 질의에 응답하는 모습. (사진=송정은 기자)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실제 주요 건설사 CEO 대부분이 경영학, 행정학, 법학 등을 전공한 이들로 건설 현장의 기술과 안전에 대한 이해가 낮고, 수익 중심의 경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단순한 형식적 책임을 묻는 데서 나아가 건설사 CEO의 역량과 배경이 현장 안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정밀하게 짚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도 “우리나라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기업 대표까지 형사책임을 물어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강력하지만 실제 재해 발생 추이는 3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중요한 건 실질적인 안전교육이 현장 작업자에게 얼마나 깊이 스며들 수 있느냐이기 때문에 관리자와 작업자의 안전 의식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리는 방향의 교육이 이뤄져야만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건설업계는 이번 국감을 앞두고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망신 주기식 청문회’로 전락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10대 건설사 중 8곳 CEO가 증인 명단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번 국감이 새 정부 첫 국감인 만큼 대통령의 엄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산업안전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개별 CEO들을 소환해 호통을 치는 방식이 과연 실효성 있는 접근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은 개별 책임 추궁보다는 시스템 개선과 제도적 보완에 달려 있다”며 “정치권이 진정으로 안전을 생각한다면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과 실무자 중심의 교육·지원 시스템 마련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송정은·홍연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