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국가로, 우리나라 기업의 핵심 투자처이자 전략적 파트너로 꼽힙니다. 2억8000만명이 넘는 인구, 풍부한 내수 기반, 디지털 금융 확산세는 국내 금융사에게도 기회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외국계 금융사에 대한 지분 규제와 복잡한 라이선스 체계, 현지화 요구 등은 K금융의 확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입니다.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은 지난 1~5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찾아 현지 금융시장의 변화 흐름과 우리 금융사의 생존 전략을 취재해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자카르타=이종용·신수정·이재희 기자)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는 총 34곳입니다. 4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자카르타 비즈니스 중심지인 SCBD(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에 집중 포진해 있습니다.
서울의 세종로 혹은 테헤란로쯤에 해당하는 SCBD의 중심 도로 잘란 수디르만을 따라 만디리·BRI·BCA 등 인도네시아 상위 3대 은행 본점이 위치해 있습니다. 현지 주요 은행 사이사이엔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국민은행, 기업은행 등 국내 은행 법인이 주요 건물에 입점해 있었습니다.
국내 은행들의 본격적인 인도네시아 영업은 2015년대 이후 본격화했습니다. 현지 은행 2곳 이상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현지 당국으로부터 진출 승인을 받았으며, 현지법인 형태로 덩치를 키우며 기업금융과 리테일, 카드, 증권·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비즈니스 중심지에 금융기관 즐비
취재팀은 자카르타에 머무는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내 2금융사들도 찾았습니다. KB금융 계열사인 KB손해보험은 현지 대형 금융그룹 시나르마스 그룹(Sinar Mas Group)의 멀티 파이낸스 계열사 지분을 인수한 합작법인입니다. 1997년 진출했고, 차보험 시장을 집중 타깃으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KB캐피탈은 2020년 5월 파트너 그룹인 순모터 그룹(Sun Motor Group)의 멀티 파이낸스 계열사 지분을 인수해 순인도 국민 베스트 파이낸스(Sunindo Kookmin Best Finance, SKBF)라는 현지 합작법인을 설립해 영업을 개시했습니다. 현지 로컬 금융사와 일본, 중국 등 해외 금융사들과 경쟁 속에서 자동차론-자동차보험 결합 전략이 한창입니다.
취재팀은 자카르타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2025 아세안-한국 금융협력포럼'도 취재했습니다. 한-아세안금융협력센터가 'The Future of Digital Innovation in Finance(디지털 금융 혁신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이번 포럼에는 아세안 사무국, 한국 금융위원회,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 등 두 나라의 금융·규제기관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아세안 국가를 넘어 아시아 지역의 금융 통합을 위해서는 디지털 금융에서 초국가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자카르타 중심 업무 지구인 SCBD 지역에 포진해 있다. 사진은 SCBD 지역을 따라 늘어서 있는 금융사 건물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경제성장률 1위 국가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10개국 가운데서도 땅이 가장 넓고 인구가 많아 아세안의 '심장'으로 불립니다. 인도네시아 면적은 한반도보다 9배 넓고, 그 안에 2억800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인도네시아 경제는 5%대 성장을 이뤘으며 지금도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달리 선거를 통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어 정치체제도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중산층이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금융서비스는 걸음마 단계입니다. 일례로 전체 인구에서 은행 계좌 보유율은 50.4%에 불과합니다. 우리 기업들이 신규 고객으로 유치해야 할 잠재고객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거점을 마련한 우리 금융사들도 이 지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다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계 은행에 대해 진입장벽이 두터운 편입니다. 현지법인을 설립하려 해도 인도네시아 당국이 외국계 은행의 현지법인 설립 신청을 모두 반려하는 상황입니다. 국내 금융사들이 법인 신설보다는 지분 인수를 통한 진출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카르타 중심 업무 지구의 인터내셔널 파이낸스 센터에 위치한 신한은행 지점에서 현지 직원들이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두터운 진입 장벽 '리스크'
주재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도네시아 OJK는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매년 말 인도네시아에서 영업을 하는 금융사의 다음해 사업계획을 심사하는데, 사업계획에는 지점과 영업점 수, 신상품 출시 계획 등 민감한 사업 전략까지 꼼꼼히 담아야 합니다.
해외 금융사에는 강력한 인력 규제도 적용됩니다. 대표적으로는 주재원 수에 제한을 두는데요. 법인 형태로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각 30여개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지인만 지점장으로 둘 수 있습니다. 현지법인에는 현지 직원들에게 지식 이전을 위해 허가를 얻은 주재원만 상주할 수 있는 규정이 있습니다.
특히 현지에는 100여개 상업은행이 영업 중이지만 상위 4대 은행이 80% 이상 점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은행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쉽게 수익을 거두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사들은 한국식 리스크 관리를 앞세워 순이익 기반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주재원은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경제 1위국이라는 인식에 갖혀서는 국내 금융사가 여기서 살아남기 힘들다"며 "현지 당국의 점진적 구조조정 정책, 지분인수를 통한 현지화의 장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K금융의 체질을 보여줘야 하는 시험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외국계 금융사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강력한 규제는 대표적인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2)편에서 계속>
자카르타=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