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500원 목전인데…안일한 금융당국

입력 : 2025-12-15 오후 3:14:38
[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했지만, 원화 가치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충분한 외화보유고로 금융시장 변동 대응력에 문제가 없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고환율로 물가와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서민층의 생활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원화 가치, 나 홀로 밀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는 1480원 선을 위협하자 정부가 연일 긴급 회의를 소집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습니다. 전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긴급 경제장관 간담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날 금융위원회 주재로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정부가 연일 긴급회의를 개최하는 배경에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가 있습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지난 7월 초 1350원대에서 현재는 1460원이 넘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당시 수준에 근접하면서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넘어 거래된 시기는 외환위기(1990년대 후반), 미국발 금융위기(2008년), 코로나19 팬데믹(2022년), 계엄 사태(2024년) 등 손에 꼽힙니다. 해당 이슈들은 국내 경제에 위협적인 요인이었던 만큼 원·달러 환율 1480원 목전은 상징적으로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고환율 흐름은 원화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와 원·달러 환율 간 괴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19일 100.24 이후 계속 떨어지다가 최근에는 98.4 수준까지 하락했습니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주간 거래 종가 기준)은 오히려 1460원 중반에서 1470원 초중반으로 뛰었습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대내외적 불확실성 확대에도 경제 상황이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에서 △금융기관의 양호한 건전성 △세계 9위 수준의 외환보유고 △낮은 CDS(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 등을 꼽으며 충분한 위기 대응 능력을 갖췄다고 자평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당국이 보는 금융 시스템 건전성 지표와 시장이 체감하는 불안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환율이 1500원을 바라본다는 것은 원화 신뢰 약화, 자본 유출 압력, 대외 충격에 대한 방어력 의문 등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인데, 시장의 불안 신호를 과소평가하면 리스크는 누적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달 원·달러 환율 평균이 1470원을 넘어서며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15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에 거래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외환보유고 충분 평가 '글쎄'
 
정부가 고환율에도 경제 대응력이 충분하고 평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외환보유고입니다. 외환보유고는 한 나라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의 총액을 말하는데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12월 기준 우리나라는 4156억달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12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204억달러였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1600원대로 치솟았던 2009년 3월 외환보유고는 2063억4000만달러였습니다.
 
과거 금융위기 상황 대비 현재 외환보유고는 충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외환보유고를 모조리 환율 방어에 투입할 수 없는 데다 즉시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 등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 시점의 외환보유고 기준으로 88%(3666억7000만달러)가 유가증권으로 당장 동원할 수 없는 자산으로 분류됩니다. 현금성자산인 예치금의 비중은 6% 수준입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외환보유고 내 현금성자산 비중과 단기외채 커버리지의 충분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무역 의존 경제 체제에서 외환보유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총액 규모로는 충분하지만, 유가증권 등 당장 현금화할 수 없는 자산 비중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정부 고환율엔 국민 재산 7% 날라갔다더니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여파와 대통령 선거를 앞정치적 불확실성이 컸던 시기였지만, 최근 고환율은 이 같은 위기 국면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치권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고 고환율의 주요 원인으로 재정확장정책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로 있던 지난 2월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환율 폭등으로 전 국민의 재산 7%가 날아갔다"고 비판했었습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계엄령 선포했지만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윤석열씨의 주장에 대해 "환율이 폭등해 이 나라 모든 국민의 재산이 7%씩 날아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가"라며 "나라가 완전 망할 뻔했다. 온 국민이 고통스러워할 뻔했다. 나라가 후진국으로 전락할 뻔했다"고 했었습니다.
 
야권에서는 6·3 대선으로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뒤 환율이 다시 10% 올랐으니 다시 국민의 재산 10%가 추가로 날아간 셈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원화 가치 하락이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한은에 따르면 11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2.6% 올랐습니다. 지난 7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세이고, 상승률도 지난해 4월(+3.8%) 이후 1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입니다. 통상 수입 물가는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줍니다.
 
서 교수는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고, 결국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은행은 올해·내년 물가 전망을 2.1%로 조정하며 관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고환율 고착화될 경우 가계가 겪을 고통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환율 부담 탓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여지마저 약해지면서 대출금리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은행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국민 살림살이 갈수록 팍팍
 
환율 부담 탓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여지마저 약해지면서 대출금리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환율은 물가 압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통화정책에도 제약을 주고 있습니다. 환율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원화 약세가 더 가속될 수 있어 동결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한은의 동결 유지뿐 아니라 매파 전환 가능성까지 열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물가가 목표 수준을 안정적으로 하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율발 물가 압력이 누적되면 한은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준금리가 동결된 상황에서도 시중금리는 빠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국고채 금리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혼합형 금리는 5%대 중후반까지 올라섰고, 일부 구간은 6%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신용대출 금리 역시 같은 기간 상단이 0.19%p 오르며 지표금리 상승폭을 넘어서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도 확장기조를 지속하니까 국채 발행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이 돼서 국채금리 상승을 이끄는 구조"라며 "(대출금리의 준거금리가 되는)이런 지표금리가 오르니까 은행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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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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