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섭 체제 KT 몽니…티빙·웨이브 합병 2년째 표류

공정위 승인에도 본계약 지연…주주 동의서 멈춘 통합
KT만 제동…'규모의 경제' 막힌 토종 OTT
글로벌 OTT 독주 속 국내 통합 표류…KT 책임론 부상

입력 : 2025-12-26 오후 2:43:00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국내 대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결국 올해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해를 넘깁니다. 글로벌 OTT 공세 속에서 토종 플랫폼의 생존 전략으로 꼽혀온 통합 논의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배경에는 주요 주주인 KT(030200)의 반대 기류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티빙과 웨이브는 지난 2023년 12월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통합 절차를 밟아왔지만, 아직까지 본계약 체결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건부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주주 동의와 세부 조건 협의 과정에서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입니다.
 
 
합병 지연의 핵심 변수로는 티빙의 주요 주주인 KT스튜디오지니의 반대가 꼽힙니다. 현재 티빙의 최대주주는 CJ ENM(035760)이며, 웨이브의 최대주주는 SK스퀘어(402340)입니다. 업계에서는 양사 최대주주 간 합병 방향성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으며, JC&파트너스, SLL, 네이버(NAVER(035420)) 등 다른 주주들 역시 합병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반면 티빙 주요 주주인 KT스튜디오지니가 합병에 제동을 걸며 논의가 사실상 멈춰 섰다는 평가입니다. 
 
이와 관련해 2022년 티빙이 KT 시즌을 흡수합병 할 당시의 합의 조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우리가 티빙에 주주로 들어갈 때는 CJ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전제가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시즌을 티빙에 합친 이유도 국내에서 OTT가 하나 있어도 글로벌 플랫폼과 겨룰 수 있을지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적자 사업을 빨리 정리하고 몰아주자는 판단이었고, 그 연장선에서 보면 티빙과 웨이브 통합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KT스튜디오지니가 티빙·웨이브 합병에 제동을 거는 것은, 당시 합병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인 KT가 OTT 통합에 따른 자기 잠식을 우려해 반대에 나선 것이 표면적인 이유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KT가 김영섭 체제 이후 협상 우위에 서서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해지면서 합병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협상 논리 자체가 틀렸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당시 합병 맥락과 산업 흐름을 알고 있다면, 이런 판단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김영섭 대표 체제 이후 미디어·콘텐츠 사업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티빙과 웨이브 합병이 장기간 표류하는 사이 전 세계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최근 워너브러더스의 OTT HBO 맥스 인수 추진을 공식화하며 콘텐츠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습니다. 워너브러더스가 보유한 방대한 영화·TV 콘텐츠와 HBO 시리즈가 넷플릭스에 합류할 경우, 구독자 선택권은 더욱 넓어지고 넷플릭스의 시장 지배력은 강화될 전망입니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 독주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콘텐츠 이용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OTT 이용률은 89.1%로 나타났고, 플랫폼별 이용률은 넷플릭스가 47.6%를 차지했습니다. 쿠팡플레이(18.9%), 티빙(13.1%), 디즈니플러스(8.3%), 웨이브(4.9%)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콘텐츠와 플랫폼 시장이 자본의 힘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OTT 통합 필요성은 2019년 웨이브 출범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과제입니다. 당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역시 "통합 OTT로 글로벌 무한경쟁에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글로벌 사업자들이 자본과 콘텐츠를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토종 OTT들이 각개전투를 벌일 경우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KT가 OTT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합병에 대한 몽니를 이어갈 경우, 국내 OTT 생태계 성장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OTT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통합마저 좌초된다면, 결과적으로 수혜를 보는 쪽은 자본의 힘을 갖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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