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이른바 '윤필용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과 함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전 육군준장과 가족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군내부 세력다툼인 점 등에 비해 인정된 위자료 과다하다며 다시 산정하라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윤필용 사건'으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전 육군 준장 김모씨(82)에 대한 사건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사실상 유지했다.
재판부는 다만 구체적인 배상액 산정 과정에서 법적 기준과 달리 해석해 과다 산정했다는 이유로 배상액을 다시 산정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에 대한 재심판결이 확정된 2009년 12월18일까지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며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고, 같은 취지로 판단 원심 판결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 사건은 군 내부 세력다툼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고 조작된 범죄혐의도 진급 청탁 명목의 뇌물죄였으며 원고 김씨가 1년여 복역하다가 가석방된 뒤 특별사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원고들의 정치적, 경제적 또는 사회적 활동이 특별히 제한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 불법행위가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또는 조작의혹사건 보다 위법성이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원심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는 유사한 과거사 사건들의 피해자들에 대해 인정한 액수나 다른 윤필용 사건 피해자들에게 인정된 위자료 액수를 훨씬 상회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그렇다면 위자료의 액수가 사실심법원의 직권에 속하는 재량사항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심은 위자료액 산정에 있어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해 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며 "위자료 산정을 다시하라"고 판시했다.
김씨는 197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육군제3사관학교 생도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윤필용 장군 숙청사건'과 관련해 진급 관련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보안사령부로 불법 체포됐다.
김씨는 보안사가 자신과 아내를 상대로 고문과 회유를 거듭하자 자신의 혐의를 거짓 자백한 뒤 기소돼 육군본부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을, 항소심은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상고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김씨는 1년간 복역하다가 가석방된 뒤 1980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7년 6월 육군고등군법회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청구를 한 김씨는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되자 가족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불법감금 및 명예훼손 등에 대한 위자료로 총 34억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국가가 김씨에게 2억5000만원, 아내 최모씨에게 8000만원, 네 자녀에게 각각 2000만원씩 총 3억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김씨가 누명을 쓰고 강제전역된 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점, 재심판결 확정 전까지 김씨와 가족들 모두 불명예를 안고 살았던 점, 아내 최씨가 신문용지 납품업 등을 계속할 수 없어 생계가 상당히 어려웠던 점이 인정된다"며 김씨에게 4억5000만원, 최씨에게 2억원, 네 자녀에게 각각 5000만원씩 총 8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4월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윤필용이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므로 형님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빌미가 돼 윤필용과 측근들이 대규모로 숙청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윤필용이 후원자 역할을 하고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이 주축이 된 군부 내 대구·경북 세력의 비밀조직인 '하나회'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했다.
◇대법원(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