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의 이목은 온통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쏠려 있다.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1년을 넘기면서 장남 이재용 부회장으로 그룹 경영의 중심축이 빠르게 이동하면서다.
이재용 체제에서 삼성은 발 빠르게 변화했다. 부친이 강조한 '마하경영' 지론을 이어받기라도 한 듯 속도전이다. 선택과 집중의 논리 속에 한화그룹에 화학·방산 부문을 과감히 매각했고, 최근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의 합병 결의까지, 숱한 개편이 있어왔다.
이 모두가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 일련의 작업이라는 데는 삼성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재계 안팎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언제, 어떤 모양새로 완결될 것인지 주목도가 더해졌다.
그동안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두 갈래로 진행돼 왔다.
첫째는 회사의 오너십(대주주권)을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에게 넘기는 작업이었고, 둘째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삼성의 경영 승계자로 사회적 인정을 받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이 두 가지 작업은 모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과 형제(이부진·이서현)들이 삼성을 대표해서 대내외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국민들도 딱히 거부감을 드러내진 않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무언가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것은 삼성의 경영승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70년 역사를 넘기고 있는 한국 재계이니 만큼 상당수 재벌들이 3세, 혹은 4세로의 경영 승계를 목전에 두고 있거나, 현재 진행 중이다.
아쉬움을 갖게 되는 원인은 합리적 승계 절차의 실종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대주주가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도출된 결과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를 따지긴 어렵다. 하지만 ‘결과’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절차’도 정당해야 한다.
여기서 ‘절차’라 함은 주주총회나 이사회 의결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절차’를 지적하는 것이다. 왕조시대 때 왕위 계승도 절차적 정당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이것은 명분이었고, 계승된 왕위에 정통성을 부여해줬다.
반면 그동안 우리나라 재벌들은 장자 중심의 세습을 통해 경영권을 대물림했다. 비록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할 지라라도, 이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은 편치 않았다. 특히 사회 속에서 함께 하지 못한 3, 4세의 일탈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세습이 낳은 황제경영의 폐단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새 주인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을 거칠 때 삼성 왕조의 정당성이 한층 강화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재벌이 사기업일지라도 다수의 주주가 존재한다면 비록 형식적일지 모르지만, 경영권 승계자를 대상으로 한 ‘검증 청문회’라도 해봄직하다.
사실 ‘사회적 합의절차’라는 것도 매우 추상적이고, 뜬구름 같은 것이어서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이를 지적하는 것은 ‘일방통행식’ 절차로 인해 국가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벌은 고용과 분배에서 우리경제의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 혹여 재벌이 잘못되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적인 우리경제의 구조이다.
그런 점에서 재벌 경영의 절대적 지배권을 가진 경영권 승계를 강 건너 불 보듯 지나치긴 어렵다는 생각이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