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전쟁의 서막이다

이상동 컴온정책앤문화연구소장

입력 : 2015-06-25 오후 2:16:12
◇이상동 컴온정책앤문화연구소장
박근혜 대통령이 예상대로 알렉산더의 칼을 휘둘렀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정면 돌파를 선택하며 국회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민족 분단의 비극을 알리는 6·25 전쟁 발발 65주년이다. 알렉산더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아시아를 정복했지만,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청와대는 위헌성을 제기하며 강력 반발했다. 일찍이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서명했던 법안은 휴지조각이 됐다. 위헌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상반되는 의견이 있고, 최종 판단이야 헌법재판소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담긴 아쉬움을 쫓고자 한다.
 
첫째, 대통령의 발언대로 국회법 개정안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정부가 무기력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와 여당은 더욱 밀접히 결합될 수 있었다. 이완된 당·정·청 관계를, 대등하고 협력적 관계로 강화시키는 기회로 활용할 기회였다. 여당이 매번 혁신안의 하나로 당·정·청 관계를 거론하지만 구두선에 그쳤던 것은 강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은 오늘날의 자리를 만들어 준 집권여당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둘째,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대통령이 정쟁 유발자로 전면에 서게 됐다. 가뭄이 농지와 함께 농민들의 가슴을 태우고, 메르스로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한데, 이를 모두 뒷전으로 물리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부권 행사의 명분으로 내세운 민생이 되레 초라해졌다.  
 
셋째, 대통령과 국회의 힘겨루기로 비춰짐으로써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스스로 낮췄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통 큰 지도자의 모습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은 이 같은 기대를 저버렸다. 특히 한때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 원내대표와 겨루는 모습은 서글픔마저 낳는다. 진즉 대통령의 입장은 충분히 알려졌으므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의요구에 필요한 법정기한을 넘겼다면 대통령의 의지도 보여주고,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최선의 선택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대통령의 재의요구에 의해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개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서 재의결되거나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야당은 별론으로 하고, 다수당인 집권여당이 주도해 재의결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지금으로선 폐기 수순이 유력해 보인다. 재의결 시도는 여당과 대통령의 결별을 의미하며, 이는 곧 여당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주도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대통령은 자존감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이는 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국회와 행정부의 전면적 속에 당·청 간 갈등 심화는 불가피해졌다. 단임제의 특성과 총선 등 정치일정까지 고려하면 서로를 적으로도 돌릴 수 있다. 야당은 호기를 맞았다. 대통령과 여당 간의 싸움을 지켜보며 그때그때 필요한 카드를 꺼내들면 된다.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통령이 걱정하는 국정 마비는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부터 비롯되게 생겼다.
 
메르스가 진정 국면에 접어드나 했더니, 연이어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종식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나마 장마가 시작돼 가뭄은 극복할 것으로 보여 다행이다. 그렇지만 정국은 시계가 불투명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국민만 지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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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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