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1. 삼호드림호의 피랍과 지불
2010년 4월4일 31만9천톤급 대형 유조선 삼호드림호는 한화 1880억원어치에 해당하는 원유를 이라크에서 적재하고 미국으로 향하던 중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그로부터 약 7개월 후인 2010년 11월, 삼호드림호는 해적들에게 원유를 빼앗긴 것은 물론 100억원이 넘는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해적질의 성공에 고무된 소말리아 해적들은 2달 후인 2011년 1월15일 삼호해운 소속의 삼호주얼리호를 또 다시 납치했다.
2. 다른 대응, 다른 결과
이번에는 정부 방침이 달랐다. 당일 오후 우리나라 청해부대(최영함)가 현장으로 이동했고, 그로부터 6일 후인 2011년 1월21일 삼호주얼리호는 구출됐다. 이른바 아덴만 여명작전이다. 8명의 해적이 사살되고 21명의 인질이 무사히 구출됐다. 충격을 받은 소말리아 해적들은 2월9일, 3개월 전 납치했던 금미 305호를 조건 없이 석방했다.
3. 석해균 선장을 살리다
이 과정에서 석해균 선장은 복부가 관통되는 중증의 총상을 입었다. 외상전문의로 이름난 아주대 이국종 교수가 급히 오만으로 날아갔다. 이 교수는 현지에서 진행된 수술에 참여한 후 1월29일 여전히 위중한 상태에 있던 석 선장을 아주대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석해균 선장이 완쾌되어야 작전이 끝난 것”이라고 말할 만큼 석 선장의 안위는 중대한 사안이었고, 국민적 관심도 지대했다. 국내 도착 초기 생사를 헤매던 석 선장은 다행히 패혈증을 이겨내면서 상태가 호전됐고 의식도 되찾아 2월28일 인공호흡기를 뗐다.
4. 석 선장 치료비, 병원이 떠안아
석 선장이 순조롭게 회복세를 보이던 2011년 5월, ‘병원비’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병실비는 아주대병원 측에서 모두 부담했지만 병실비 외에도 1억7천5백만원에 달하는 치료비가 남아 있었다. 응당 삼호해운이 지급 의무를 지고 있었지만, 삼호해운은 법정관리를 신청해놓은 상태였다. 병원비가 문제되자 삼호해운의 천복우 상무는 병원을 찾아 “병원비는 회사가 책임지겠다”고 말해 일단락 지어지는 듯 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1월4일, 총상을 입은 지 280여일 만에 석 선장은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지만 아주대병원 측은 끝내 치료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아주대병원의 모법인인 대우학원은 이사회를 통해 석 선장에 대한 치료비 결손을 대손상각처리함으로써 2억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최종 포기했다. 당시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추호석 대우학원 이사장은 "정부에서 조치를 해줄 수 없다면 추후 다른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5. 석 선장 사건과 메르스 사태가 의사들에게 남긴 교훈
시간이 흘러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전국을 휩쓸었다. 기존에 없던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경우 철저한 접촉자의 격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 의료기관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공공의료기관이다. 이번 메르스와 같은 신종 전염병원은 일찌감치 공공 의료기관을 진단과 치료병원으로 지정해 전담케 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확한 위험도에 대한 대국민 설명도 없었다. 그 결과, 진료하던 환자 중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나오거나 경유한 것으로 밝혀지는 순간 해당 병원은 ‘메르스 병원’으로 낙인이 찍혀 큰 경제적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규모 있는 병원은 부담이 더 컸다. 확진자가 나올 경우 병원 봉쇄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때 환자들에게 “병원비 부담을 지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약속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 엄청난 부담이 고스란히 민간 의료기관들 몫이다. 정부가 일부 손실을 보전한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병원은 이외에도 코호트 격리로 인해 2주 가까이 다른 입원 환자와 외래환자를 받지 못해 생긴 손실, 격리 해제 이후 환자 감소에 따른 손실을 모두 감수해야 하는데 정부의 지원책은 아직 말 뿐이다. 소규모 의원은 또 어떤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메르스 환자 경유 병원의 손실액은 1곳당 평균 3천200여만원에 이른다.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때문에 ‘메르스 룰렛’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하루하루 불안한 상태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어쩌다 빨리 진행되는 폐렴 등 메르스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은 병의원과 보건소가 서로 받지 않기 위해 떠넘기는 현상도 벌어졌다. 이 모든 상황은 메르스 감염환자를 찾아내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페널티를 안아야 하는 괴상한 여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6. 지혜로운 경영자가 필요하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국가 위기상황까지 확대된 결정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석 선장의 치료에서 그랬듯이 모든 책임을 민간에게 지우고 있다. 공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더 큰 피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의료기관들이 다음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국가를 경영하는 이들은 그래서 지혜로워야 한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