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의사협회장의 오진이 증명한 것

입력 : 2016-01-14 오전 11:53:26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 주장이 거세다. 한의사들도 엑스레이, 초음파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게 핵심이다. 이윽고 지난 12일, 김필건 한의사협회 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의사들에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해야 한다면서, 회견장에서 29세 남성을 대상으로 골밀도 진단을 하는 시연행사를 펼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이 행사를 통해 왜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지를 입증했다.
 
그가 기자회견장에서 사용한 것은 초음파를 이용한 골밀도 진단기였다. 골의 밀도에 따라 초음파가 투과되는 속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결과는 T점수(골밀도를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비교한 수치)가 -4.41, Z점수(동일한 연령대와 비교한 수치)가 -4.30이 나왔다. 각 수치는 평균에서 벗어난 표준편차를 의미하기 때문에, 점수대로 해석하면 검사를 받은 사람이 100만명 중 끝에서 8번째로 골밀도가 낮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일반인 10만명 중에서 골밀도가 꼴찌라는 뜻이다. 골밀도의 감소는 청년기를 넘어가면서 연령에 비례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29세 젊은 남성이 10만명 중 골밀도가 꼴찌에 해당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단언해도 된다. 의사가 이 같은 결과표를 봤다면 가장 먼저 검사 오류를 의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러나 김필건 회장은 “골감소증에 해당된다”면서 “골수를 보충하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진단은 틀렸다. 환자는 골감소증이 아니라 검사 오류였을 것이며, 만에 하나 오류가 아니더라도 그의 수치는 골감소증이 아니라 골다공증에 해당된다.(골감소증은 T점수 2.5미만에 해당) 더욱이 '골수를 보충하는 치료'라는 진단은 골다공증 치료법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 같은 진단으로 미뤄봤을 때 그는 골밀도 검사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보셔서 아시겠지만 무슨 어려운 게 있습니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내용 아닙니까"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의사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의학과 한의학은 완전히 다른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연에서 밝혀졌듯이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서 정확히 진단을 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그 이후의 치료계획은 더욱 심각하다. “골수를 보충하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한의사협회장의 말처럼 의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환자에게 권유할 경우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몇 해 전, 한 의사단체가 키가 작은 어린이를 데리고 20여곳의 성장클리닉 한의원을 방문해 한의사들의 진단을 수집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의원들마다 성장 부진의 원인을 다르게 얘기했는데 그 이유들은 “뇌가 불안정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서” “피가 뜨거워서” “골반이 틀어져 있어서” 등 제 각각이었으며, 대부분 수백만원짜리 치료를 권유했다. 심지어 “좌우 두상의 크기가 다르면 다리에 걸리는 부하가 달라져서 양측 다리 길이의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 곳도 있었다. 이는 모두 의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수개월 전, 손금을 이용해서 병을 진단하는 한의사가 고발을 당했지만 그는 결국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한의학에 근거한 진료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보편화됨에 따라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크게 줄었고, 이에 따라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원하는 한의사들의 열망은 매우 절실해졌다. 그러나 현대 의료기기는 결과를 의학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치료도 검증된 현대 의학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 음양오행의 원리와 손금에 근거해서 진단을 하는 한의사들에게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그들의 비의학적 진단과 치료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 특히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한의사협회는 의료법을 무시하고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한의사들을 살리자고 국민을 실험쥐로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한의사협회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검사 오류의 원인이 밝혀졌다. 그가 “아킬레스건을 중심으로 검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초음파를 이용한 골밀도검사는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발의 뒷굼치뼈, 즉 종골을 대상으로 검사해야 한다. 그 행사는 한편의 슬픈 코미디였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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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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