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화 지각변동)②국내도 빅딜·스몰딜 활발…관건은 '안정화'

입력 : 2016-03-21 오후 6:35:19
[뉴스토마토 조승희기자] "아직도 한국의 석유화학 공정이 좋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새로운 산업을 하지 않으면 이제까지 석유화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차국헌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9월 발간된 도서 <축적의 시간>에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일갈했다. 과거에 안주해서는 모두가 도태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지난해 완만한 저유가 기조에 수급상황이 크게 개선, 높은 실적을 거두면서 위기설은 잠시 가라앉았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불황에 대한 업계의 고민은 여전하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중요했던 석화업계는 이제 단순히 크기만 키우기보다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주목하고 인수합병(M&A), 합작사업 등을 단행하고 있다.
 
석화업계에서 신사업 투자가 가장 활발한 기업은 LG화학(051910)이다. 지난해 매출 약 20조원 가운데 15조원가량은 기초소재부문에서 거뒀고 나머지 5조원만 정보전자·전지부문에서 발생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정보전자·전지부문의 설비투자(CAPEX)는 8100억원으로 기초소재부문(7100억원)을 뛰어넘는다.
 
지난 2014년 해수담수화용 역삼투압(RO) 필터 분야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나노H2O를 인수한 LG화학은 산업용수용·가정용 필터 기술을 자체 개발해 신성장의 한 축으로 키웠다. 지난해 9월 400억원을 투자해 충북 청주에 수처리 역삼투압 필터 전용공장을 완공했으며, 10월에는 전세계 8개 해수담수화 프로젝트에 역삼투압 필터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올해도 400억원을 들여 수처리 RO필터 2호 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산업을 육성해 온 LG화학은 최근 바이오 역량 강화를 위해 동부팜한농 인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최종 결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LG화학은 현재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실무진 수십명을 파견해 실사작업을 진행 중이다. LG화학은 석유화학 분야의 유기합성 및 분리·정제기술과 장치공장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농화학 사업을 적극 육성할 방침이다.  
 
  
삼성에서 롯데로의 인수가 마무리된 화학사들은 최근 간판을 '롯데'로 바꿔달았다. 롯데케미칼(011170)삼성SDI(006400)의 고부가 합성수지(ABS) 부문, 고충격·고강성 내외장제로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PC) 부문 등을 넘겨받았고, 삼성정밀화학의 염소·셀룰로스 계열 정밀화학 제품 및 삼성BP화학의 초산 부문도 안으면서 포트폴리오의 약점을 보완하게 됐다. 또 원재료 구매 등에서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한화는 지난해 인수한 각 기업의 사업구조를 재편과 조직 융화에 집중했다. 한화솔라원(옛 솔라펀파워)과 한화큐셀을 합쳐 한화큐셀로 일원화하며 마케팅과 물류, 연구개발 등에서의 비용절감과 미국 영업 강화를 꾀했다. 2012년 인수당시 4600억원의 영업적자였던 독일의 큐셀은 현재 한화그룹의 핵심사업으로 성장했고,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 4030만달러(약 466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인수한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과는 올해 시스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화학적' 결합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고순도테레프탈산(TPA) 주력업체인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하며 구조조정 이슈의 중심에 놓이게 된 한화는 올해 원가절감을 통한 실적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화가 한화생명을 매각한다면 화학 또는 방산 분야에 추가적인 M&A를 단행할 것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SK도 지난해 11월 산업용 특수가스를 생산하는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삼불화질소(NF3) 사업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삼불화질소(NF3)는 반도체·LCD·태양전지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세정용으로 쓰이는데,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고집적화가 진행될수록 NF3의 수요도 늘어난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64억원으로 규모는 비교적 작지만 3·4분기 영업이익률이 35.8%에 달할 정도로 알짜 회사다. 
 
SK그룹의 계열사인 SKC는 지난해 바이오랜드와 SKC에어가스 등 자회사 실적 호조에 힘입어 영업이익 2181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SKC는 바이오 소재 사업 진출을 목적으로 2014년 인수한 바이오랜드를 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키울 예정이다. 지난 2008년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손잡고 양사의 폴리이미드(PI) 필름 사업을 분리해 합작회사 'SKC코오롱PI'를 설립하기도 했다. SKC코오롱PI는세계 PI필름 시장 점유율 1위로 도약, 지난해 3분기 411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올리며 성공적인 M&A로 평가받고 있다. 내년 구미공장에 신증설 중인 3호라인이 가동을 시작하면 연간 생산량은 2700톤으로 늘어나 세계 1위 점유율 위치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시 유가가 오르고 공급이 늘기 전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석화업계가 배터리, 태양광, 고부가 화학제품 등 신사업 육성에 집중하는 것은 호황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오는 8월 시행되면 기업들이 과세이연제도나 절차간소화 등 혜택을 누릴 수 있어 크고 작은 M&A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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