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졌다. 그리고 국민과 야당이 이겼다.’
이번 4·13 국회의원 총선거에 대한 민심의 평가다. 이번 선거 결과는 선거에서 구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던 선거 전문가들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예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민심이 무섭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이번 총선은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이 되었다. 하나는 대통령과 새누리당 내부의 경쟁, 다른 하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호남경쟁이었다. 결과는 대통령의 국민여론의 패배와 더민주의 호남여론의 패배였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공천과 관련해 국민의 상식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넘겨주겠다는 약속은 고사하고, 진박감별 논쟁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의 공천에 개입하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국민은 그 말을 오히려 ‘깊게 개입하고 있다’라고 읽었다. 총선 결과는 그것에 대한 국민의 답변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더민주는 친노패권 논쟁으로 지속적인 내부갈등이 있었다. 특히 호남에서의 민심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당지도부는 친노패권은 없다며 비노세력을 감싸 안지 않았고, 비주류 세력은 탈당을 결행했다. 총선 결과는 그것에 대한 호남의 답변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대통령 심판론’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유능한 선거의 여왕이 아니다. 유능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지도자다. 국회와 갈등이 있으면 호통을 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를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 타협을 이끌어내는 지도자를 원한다. 그것이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진박을 선별해 국회로 보내겠다는 발상은 여왕의 자질이지, 대통령의 자질이 아니다. 그것은 곧 국민을 이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 결과로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약속했듯, 새로운 지도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겉보기에는 새누리당이 패배한 것이지만 속내는 대통령 심판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청와대는 국정장악력이 문제가 아니라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또한 이제 원내교섭단체가 된 하나의 야당이 아니라 두 개의 야당과 협상해야 하고, 여당인 새누리당도 더 많은 대화와 다양한 의견대립을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회를 향해 호통 치는 대통령의 모습도 이제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야당은 어떤가? 분열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전체 구도에서 승리했다. 선거구도상 서울과 수도권에서 전멸할 것이라는 우려를 털고 선방과 약진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딜레마에 빠졌다. 더민주는 호남에서 패배했고, 국민의당은 호남에서만 승리했다. 두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서로가 패배하기를 원했다.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던 두 야당의 패배를 국민이 막아줬다. 하지만 무거운 과제는 남겨뒀다. 야당 분열의 핵심인 호남을 여전히 남겨둔 것이다. 하나였던 야당의 내부에서 총선을 앞두고 풀지 못했던 것을 이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두 야당이 다시 풀어야 한다.
이번 총선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가 적지 않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슴이 뛰지 않는 선거였다. 정책과 비전은 없고, 국민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들 정당의 생존을 위해서만 뛰는 선거였다. 공천 과정도 여야를 통틀어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경제민주화나 무상급식 등 정책의제와 아젠다로 국민들의 주목도 끌지 못했다. 축제는 끝났지만 국민은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바가지만 잔뜩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 총선이었다.
대통령에게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영구적 선거캠페인’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 결과로 대통령은 국회와 여당, 야당에게 더 이상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이번 민심의 최종적 결과는 대통령 심판론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치가 아니라 정치의 복원이다. 호통이 아니라 동의이고, 여야를 중재하는 설득하는 리더십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것은 대통령은 여당만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결과로 새로운 정치지형이 등장했다. 이제야말로 호위무사들의 정치적 경호가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능력과 정치실력으로 제대로 정치력을 발휘할 때다.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지 않던가.
양대웅 코리아 아이디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