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시대가 변함에 따라 법률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1948년 7월17일 제헌국회는 법률 제1호로 정부조직법을 제정했다. 이후 정부조직법은 71차례의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흔히 노동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도 그 역사가 깊다. 1953년 5월10일 제정된 옛 근로기준법은 1997년 3월13일 새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 폐지됐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다른 법률만큼 시대상에 민감하지 않다. 법률안의 명칭부터 그렇다. 우리 근로기준법의 골격은 일본의 근로기준법이다. ‘근로자’라는 명칭도 일제강점기에 유입됐다. 주로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 수탈을 위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다. 그런데 이 부정적인 단어가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법 이름이 됐다. 일제의 잔재임과 동시에 반공사상이라는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였다. 당시 노동이란 단어에는 빨갱이란 딱지가 붙었다. 북한의 집권당이 조선노동당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우리 정부가 노동운동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른 이유로 근로기준법이란 이름이 유지되고 있다. 바로 노동자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다. 노동자의 기준이 경제적 종속성이라면 근로자의 기준은 사용자 종속성이다. 노동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라면, 근로자는 그 중에서도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에 한정된다. 이 때문에 근로자란 표현이 노동자로 대체되면 그 법적 정의와 대상도 현재 통용되는 노동자에 맞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사용자의 의무가 늘어남을 의미한다. 지금껏 특수형태근로종사자란 이름으로 불리며 특례조항을 통해서만 권리를 보장받던 학습지교사 등도 넓은 의미에선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동자는 능동적 존재다. 피사용자의 지위가 높아지면 사용자들에게는 좋을 게 없다.
정부의 사정은 보다 복잡하다. 경영계의 눈치, 노동운동에 대한 거부감, 행정편의 위주의 사고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 등 기관·기구의 이름에는 노동이란 단어가 들어감에도 노동자만큼은 수동적인 의미의 근로자로 표현된다.
법률안의 이름뿐일까. 내용에도 구시대적 조항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현행 근로기준법 제63조 노동·휴게시간 적용제외 업종에는 감시 또는 단속적(斷續的) 노동자가 포함된다. 이 규정은 일본의 근로기준법을 따라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에 포함됐다. 여기에서 단속적이란 일이 끊어짐과 이어짐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가 불명확한 경우 일반 노동자들과 같은 노동·휴게시간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감시 노동자들의 업무가 다양해지면서 단속적보단 상시적으로 노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부터 최저임금 감액 대상에서 감시·단속적 노동자가 제외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이 변하면 법도 변해야 한다. 2016년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1953년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그때와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다를뿐더러, 이제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 하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특고 등의 이름으로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1987년 헌법만 고쳐야 할 게 아니다. 지금의 근로기준법은 너무 낡았다.
김지영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