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정부의 갈등이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다. 투쟁보다 대화를 앞세웠던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박차고 나와 길거리 투쟁에 나설 정도이니 민주노총의 대응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현대차 등 금속노조의 파업이 진행 중이고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종의 투쟁도 이어질 상황이다. 추석 이후에는 공공부문 노조와 금융권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예정되어 있다. 노동계 투쟁의 확산에는 임금인상과 고용보장이라는 사업장 이슈와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 폐기라는 요구가 중첩되어 있다. 어찌 보면 올해 노동계 투쟁은 대정부 요구가 핵심이다. 노동4법 추진 중단과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및 퇴출제 도입 가이드라인 폐기가 그것이다.
노정갈등의 심화와 노동관계법 개정 논란 속에서 2017년 최저임금이 확정되었다. 고용노동부는 5일 작년보다 7.3% 오른 최저임금 6470원을 고시하였다. 이는 일급으로 환산 시 8시간 기준 5만1760원이고, 월급으로는 135만223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결과는 전년도 인상률인 8.1%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4.13 총선에서 여야 모두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약속했다. 야당은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새누리당은 8000~9000원을 말했다. 정치권의 총선 공약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을 보면서 노동개혁의 진짜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개혁의 방향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와 청년고용 확대이다. 이중구조의 해소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및 영세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대폭 향상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보호 바깥에 있는 이들의 저임금 해소의 유일한 방안은 법정 최저임금의 인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의 정책 의지에 달려 있다. 최저임금은 형식적으로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 속한 노사 위원과 공익위원 27명이 결정하지만, 실제 권한은 공익위원 9명이 갖고 있다. 공익위원은 전체 위원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노사 의견이 항상 대립하면서 공익위원들이 낸 중재안(심의촉진구간)으로 최저임금이 정해져 왔다. 그런데 공익위원들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어 공정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정부의 최저임금 정상화 의지가 없다면 국회가 앞장서 최저임금법 개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두어 최저임금에 관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공익위원을 국회에서 추천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편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최저임금 미달자를 줄이려면 벌칙조항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참여연대의 ‘최저임금보고서 2015년 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고용노동부가 2015년 근로감독을 통해 적발한 최저임금 미달임금 지급 건수는 919건, 업체 수는 899개소다. 근로감독을 통해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노동자 수는 모두 6318명이다. 하지만 위반에 대한 사법처리는 모두 19건으로 사법처리가 위반건수 전체(919건)의 2%에 불과한 솜방망이 처벌이다. 최저임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가 최저임금액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할 경우 그 차액의 3배 내지 5배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독일은 사용자가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최대 50만 유로(6억6700만원)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최저임금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저임금노동의 해소도, 내수경제도 살릴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은 실업급여, 장애인 지원금 등 16개 법률, 31개 제도와 연동돼 있어 그 파급 효과가 적지 않다.
소득 양극화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하위 10%가 월 92만원을 벌 때, 상위 10%는 월 985만원을 번다. 2016년 2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월 92만원으로 버티는 가구가 160만명에 이른다. 노동개혁의 종착점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현이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30년차 미화원 기본급이 신입과 똑같은 126만원이에요. 우리는 공항 가족이 아니에요.” 노동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저임금노동의 일소, 상시·지속적 일자리의 정규직 고용관행 확립이 그 시작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