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제는 중산층이다

입력 : 2016-09-08 오후 4:01:58
 
대한민국 소득불평등 속도가 가파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국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위 10% 소득 집중도는 44.9%(2012년 기준)로 세계 주요국 중 미국(47.8%)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만 해도 우리나라 상위 10% 소득 집중도는 29.2%였지만 외환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상승해 2000년 35.8%, 2008년 43.4%에 이어 2012년 44.9%까지 17년간 15%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외환위기 이후부터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경제성장 과실 대부분이 상위 10% 계층에 돌아갔다.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나 지니계수, 상대적 빈곤율, 지니계수 등 다른 불평등 지표들도 심각한 경보를 울리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날 밤을 새가며 TV를 시청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다. 축구경기를 보다 보면, 승패는 언제나 미드필드에서 판가름이 난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가 곧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미드필드는 신체로 따지자면 허리에 해당한다. 축구도 허리가 튼튼해야 이기는 것처럼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가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산층이 얼마나 많고 견실한가 하는 것이 국가 경제의 건전성과 발전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중산층은 단순히 중위소득의 그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중산층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의 기반이다. 중산층의 소비가 위축되면 내수경제는 활력을 잃게 된다. 중산층이 허약해 양극 간 계층의 불평등이 심화하면 계층 갈등으로 인해 사회의 불안정성은 높아진다. 반대로 중산층이 건실하게 받쳐주는 국가라면 사회 통합이 잘 이뤄지고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게 된다. 중산층은 경제뿐 아니라 그 사회의 안정성을 지켜주는 안전판과도 같다. 어느 나라든 중산층이 강해야 나라가 부유해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 대선에서도 ‘중산층 복원’이 주요한 화두다. ‘트럼프 현상’으로 불리는 기저에는 ‘중산층의 분노’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까운 일본의 예도 있다. 일본 경제는 1960년대 눈부신 성장을 했다. 당시 일본 국민은 전체 인구 90%가 ‘자칭 중산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992년 일본의 거품경제는 붕괴된다. 기업 도산, 집값 하락, 대량 실업사태로 중산층은 무너지고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된다.
 
최근 국세청은 2010년부터 2014년도 귀속분 소득세, 소득 구간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중산층의 붕괴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중산층은 74%에 해당되었는데, 2015년 기준 67%로 7%포인트나 줄었다. 중산층의 소득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 정부 들어 중간층 소득증가율은 역대 최하위다. 중산층 소득이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사라지고 나쁜 일자리만 대폭 늘어나는 우리 노동구조 탓이다. 중산층의 붕괴는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중산층 붕괴는 예외 없이 빈곤층의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붕괴는 희망의 붕괴와 같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기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안 될 것이라는 좌절감은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게 하고, 도전을 잃게 한다. 도전이 없는 사회는 활력이 생길 리 없다. 위기를 극복할 힘도, 통합도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버린다.
 
중산층과 함께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허리는 중견기업이다.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키우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진입하는 이른바 ‘성장사다리’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의 경제기조에서 중소기업은 당장 오늘의 생존도 힘든 상황이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중산층과 중견기업이 통째로 와르르 무너질 위기인데, 우리 경제가 잘 돌아갈 리가 없다.
 
지난 대선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의 핵심 공약은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였다. 대통령의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는 ‘국민행복’이라는 국가비전이 중산층 재건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그런데 집권 초 발표한 5개년 국정과제에 ‘중산층 복원’은 아예 빠져버렸다. 국정비전과 전략, 4대 국정기조, 140대 국정과제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가 없다. 대통령의 중산층 복원 약속이 사라지면서 계층 간 사다리는 급격하게 허물어져 버렸다. 위기의 중산층은 오늘도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의 위기는 우리 경제의 위기다. 중산층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우리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목적의식적인 중산층 육성정책이 필요하다. 박근혜정부의 경제기조는 이제라도 재수정되어야 한다.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만 심화시키는 경제기조로는 중산층 붕괴만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중산층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는 지금, 여전히 대기업만 잘 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낡은 경제관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문제는 여전히 중산층이다.
 
양대웅 코리아 아이디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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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