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었다. 촛불의 강이었다. 서울 도심을 관통하며 흐르던 촛불이 일제히 어둠을 불사르기 위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촛불에 놀란 주변 산에서 내려온 그림자도 촛불의 강에 몸을 흠뻑 적실 것만 같았다.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광화문도 경복궁 안에서 오랫동안 품어 왔던 뜻을 전하고 싶었는지 촛불의 강에 자신의 이름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한 곳에 선 채 침묵으로 살아왔던 은행나무 가로수들도 노랗게 뜬 얼굴 같은 이파리들을 강 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마침내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파리들이 떨어질 때마다 강은 그 몸짓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강에는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늦가을에 만개하는 꽃을 보기 위해 하늘에서 걸어 나온 별들도 강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만추의 계절, 서울 도심에 쏟아낸 함성으로 메아리는 깊어가고, 단풍도 붉게만 물들어가는 밤이었다.
2016년 11월의 어느 주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도심에서 빚어진 풍경이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로 불거진 민심이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다.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민초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촛불을 켜고 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에게는 국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 않은가. 100만 명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고, 급속한 고령화와 고용불안으로 쏟아지는 노인빈곤율도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또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34개국 중 거의 꼴찌에 가까운 낮은 저출산 문제 등, 우리의 현실과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 시점에 그저 말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는 최근의 비상식적인 사태에 궐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세계 경제는 안개 속이고, 그 안개 속을 헤치고 나가야 할 대한민국의 과제는 나날이 쌓여가기만 하는 형국이다.
난세다. 분명 난세다. 이 난세를 겪으면서 필자는 우리 대한민국은 언제쯤 존경받는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원초적인 그리움을 토로하고 싶다. 퇴임을 앞둔 미국의 44대 대통령 오바마는 최근의 미국 여론조사에서 57%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네티즌들은 그가 퇴임하면, “그를 영국의 총리로 모셔가고 싶다.”는 믿기 어려운 보도도 흘러나온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80%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아베 수상은 10월 말 여론조사에서 60%의 지지율을 보였다는 뉴스가 남다르게 들려온다. 여성 총리인 독일의 메르켈 또한 최근 4연임 도전을 선언한 가운데, 55%의 지지율로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외신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우리의 현대사에서 시종일관 뜨거운 지지를 받고 끝이 아름다웠던 지도자가 있었던가 하는 질문이 새삼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더불어, 과연 이 난세를 극복해나갈 지도자가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기는 한가, 하는 의문도 이 계절을 더 쓸쓸하게 한다.
그래도 희망은 품고 살아가야 한다. 굴곡진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모인 100만 명의 촛불 집회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던 날, 중국의 신화사 통신은, “축제 같은 집회” 라고 표현하는 등, 세계의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대한민국의 성숙된 집회 문화에 찬사를 타전하고 있었다. 그 많은 시위대가 모였지만, 다음 날의 광화문 일대에는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꽃이 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시그널이다. 뿐만 아니라, 집회가 끝나고 거리를 청소하고 가야겠다는 뜻으로, 어느 남성이 자비로 대용량 쓰레기봉투 200장을 구매하여 깨끗한 시위를 독려하며, “후회는 없다”는 글과 함께 33만 2000원이 찍혀 있는 영수증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아름다운 뉴스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는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린다.
우리 민초들은 난세를 극복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건강하게 울분을 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저력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자랑스럽다는 자부심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 이제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우리들에게 희망적인 패러다임을 보여주어야 할 시간만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