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1년 묵혀 10분만에 처리한 소방법

입력 : 2018-01-10 오후 7:02:53
[뉴스토마토 차현정 기자] 소방안전과 관련한 5개 법안이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작년 지난해 12월21일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이후 지적된 문제들을 보완한 것들이다.
 
법안처리는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1년 넘게 국회에 묶여있던 법안이 통과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여다. 제천 화재 발생 이후 소방안전 관련 법안이 해당 상임위인 행안위에서 먼지만 뒤집어 쓴 채 방치되고 있다는 여론의 거센 압박과 무관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행안위 회의는 이례적으로 국회 폐회 중 소집됐다. 사고 발생 20일 만이다.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진상을 밝혀 달라”며 국회를 찾아 온 제천 화재 유가족 요청에 의해서다.
 
류건덕 유가족대책위원장은 회의에 참석해 “29명의 희생자가 창밖의 소방관을 바라보며 구조 손길을 내밀어 주길 바랐고, 살려달라 애원하다 희생됐다”며 “세월호에서 선창 밖 해경을 바라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던 세월호 참사와 뭐가 달라졌나”라며 성토하기도 했다.
 
통과된 5개 법안은 소방기본법과 ‘소방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이다. 소방기본법은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소방차 전용구역에 주차하는 경우에는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전용구역 진입을 가로막는 행위도 금지하도록 했다. 소방산업진흥법은 화재현장에서 소방장비의 고장 없이 안전한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소방장비 기술점검과 운용교육을 하도록 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법’은 특정소방대상물의 소방안전관리자와 보조자에 대한 실무 교육 실효성 재고를 위해 실무교육 이수를 안 한 소방안전관리자와 보조자에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제천 화재 발생 이전에 법안이 처리됐더라면 대형 인명피해는 피할 수 있었을까. 이미 모두 처리됐어야 할 법안이 처리됐음에도 허탈감은 감출 수 없다. 그토록 오래 묵힌 법안들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크다. 그럼에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이번 5개 법안 처리 이후 후속 법안들의 타결을 위한 토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직 남은 소방안전 법안이 잔뜩 있다.
 
서둘러야 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란 치욕과 오명의 국가로 여전히 기록되고 있다. 국회가 더 이상 사후약방문과 정쟁에 몰두할 시간이 없는 이유다. 수시로 터지는 참사로 다수의 국민들이 희생되는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에 어떤 진전도 보여줄 수 없다.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재난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면 보강할 예산부터 우선 배정하고, 제도가 부실해 예방에 허점이 있다면 관련 법규를 신속하게 만드는 것이 국회의 책무다. 소방안전 시스템을 다시 한 번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입법이 필요한 사안에 조속히 협력해야만 한다. 지금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차현정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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