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호 열차’의 정치학

입력 : 2018-03-29 오전 6:00:00
2014년 12월25일 ‘마오쩌둥호’는 베이징을 떠나 마오쩌둥 주석의 고향 후난성 창사를 향해 떠났다. 다음 날인 26일은 마오 주석의 121번째 생일이었다. 일반인이 이용하는 마오쩌둥호와 달리 마오 주석의 전용열차는 총 11량으로 구성돼 있었다. 마오 주석의 집무실과 침실이 따로 있었고 마오 주석의 개인식당과 부엌, 그리고 수행원과 경호원 숙소, 의무실 등 사실상 움직이는 마오 주석의 호화집무실이었다.
 
마오 주석은 전용 비행기도 있었으나 말년에는 린바오(林彪)사건 이후 거의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았고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시점에는 거의 전용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그의 전용열차가 이동하면 모든 철도노선이 정지되었고 전용열차가 지나는 기차역마다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면서 폐쇄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인민들도 마오 주석이 지나간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나는 기차역마다 무장경찰 등 보안요원들만 지키면서 썰렁해지자 비서실장이 공안을 인민들로 위장해서 기차역을 채우기도 했다.
 
특히 마오 주석의 전용열차는 그가 깨어있을 때 운행하고 잠잘 때는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 열차노선이 일주일 정도 뒤죽박죽되기 일쑤였다. 전용열차의 전속승무원이었던 장위펑(張玉鳳)은 마오 주석의 총애를 받아 말년에 마오가 외국수반을 접견할 때도 배석할 정도로 신임을 얻은 기밀담당비서로, 마오 주석의 임종까지 지킬 정도로 대단한 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실제 2인자 류샤오치에게 권력을 넘겨준 마오 주석의 ‘전용열차’가 지방에서 떠돌다가 베이징에 들어오자, 중난하이는 발칵 뒤집어졌고 문화대혁명이 발동됐다.
 
우리나라의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 전용열차가 편성돼있다. 대통령의 지방일정 때 기상상황에 따라 헬기 등을 이용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전용열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그러나 독재국가 지도자의 전용열차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압록강 철교를 넘어 베이징으로 갔다가 돌아간 북한의 ‘1호 열차’는 중국 최고지도자의 전용열차를 닮았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일성, 김정일은 경호상의 이유와 고소공포증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를 오갈 때 전용열차를 이용하곤 했다. 1호 열차라 불리는 북한 지도자의 전용열차가 베이징 등 조중국경을 넘을 때는 최고지도자가 비밀리에 방문한 경우 외에는 없었다. 그때마다 하루 이틀 전부터 주요 기차역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고 열차가 지나는 조중국경이 바라다보이는 호텔의 숙박도 제한되곤 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 공식발표된 이번 경우에도 똑같았다.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고소공포증도 없는 김 위원장이 굳이 베이징까지 만 하루가 걸리는 전용열차를 이용한 방중을 선택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중국의 최고지도자도 요즘은 마오 주석 때와는 달리 최소한의 경호를 선택하면서 인민들에 대한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는 중국에서 과거와 같이 과도한 기차역 통제 등의 과잉 경호를 감수하면서까지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편 방중을 이끈 것은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6년 만에 첫 해외방문이면서도 국제외교무대 데뷔를 이처럼 아버지 김정일 때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적잖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비공개 실무방문‘이라는 목적이었다면 조용하게 고려항공을 이용해서 빨리 다녀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압록강철교를 건널 때부터 요란하게 원님행차에 나팔 불듯 1호 열차를 타고 베이징을 향하는 것 자체가 대내외에 자신의 방중을 알리고자 하는 연출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위성을 통해 북한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평양을 출발한 1호 열차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중국도 김 위원장 방중을 보다 극적으로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애써 전용열차편을 통한 중국방문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중국내에서는 남북 정상회담과 연이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과정에서 소외된 ‘중국패싱‘에 대한 우려가 커져만 가고 있었다.
 
한반도에 대한 베이징의 시각은 향후 미국과의 대결구도에서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카드 중의 하나가 북한이었다. 무엇보다 비핵화 문제의 고리가 대북제제와 압박을 통해 마련되면서 오히려 딜레마에 빠진 것이 중국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공조에 중국이 힘을 실으면서 전통적인 조중관계는 소원해졌고, 북한은 중국에 대해 ‘대국같지 않은 대국‘이라며 노골적으로 불평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1호 열차의 베이징행이 전격적으로 성사되면서 중국과 북한 관계는 김정일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문을 열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보다 첨예화될 경우, 중국은 북한 카드를 내밀 것이고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북한으로서도 중국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김 위원장의 1호 열차가 다시 한 번 베이징으로 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풀어놓은 김 위원장의 1호 열차 보따리에 핵 문제에 대한 솔직한 답이 들어있었을지 궁금하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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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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