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삼성 분식회계와 경제논리

입력 : 2019-05-13 오전 6:00:00
“A가 B에게 OO을 보냈다.”
 
이 문장을 보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가. 만약 당신이 A와 B, 그리고 OO를 안다면 이는 비교적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나경원 대표가 이인영 대표에게 선물을 보냈다”라면, 자한당이 민주당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되어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김장수가 노미란에게 쌀을 보냈다”라면, 김장수가 누구인지, 노미란이 누구인지 둘 사이에 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는 당신은 ‘판단을 유보’하고, 인터넷을 뒤질 것이다. 주로 당신이 신뢰하는 언론을 검색해 김장수에 대해, 혹은 노미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해당 명제에 대해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정하게 될 것이다.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이슈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거액의 세금을 내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삼성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도록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어떻게 협조했었는가와 그 과정에서 어떤 위법이 있었나’였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측이 내세운 논리는 ‘대한민국과 대통령이 협조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아예 그러한 종류의 조직적 승계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였고, 따라서 ‘박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은 협조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재판에서는 그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하지만 2심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즈음에 갑자기 제일모직의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4조5000억 이상 뛰어 오르고 결과적으로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3배가 넘게 인정돼 이 부회장이 돈 한 푼 안들이고 삼성을 지배하게 된 것을 ‘천우신조’ 혹은 이 부회장이 ‘전생에 나라를 세 번 구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를 전제로 2017년부터 1년 넘게 특별감리를 벌여오다가 2018년 7월 12일 바이오로직스의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 사항과 관련된 공시누락을 확인하고 이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11월 14일 증선위에서는 바이오로직스에 대해 거래정지와 과징금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 5월 초, 검찰 수사결과 드러난 사실은 삼성전자 사업지원 TF(태스크포스) 임원들이 2018년 4월쯤 부터 공장 바닥을 뜯고 서버와 노트북 등 자료를 숨기고, 이 부회장의 승계구도 작업과 관련된 문건들을 모두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실무자급 보안 직원 A씨가 회사 공용서버를 떼어 내 모처에 은닉했고, 직원 B씨는 감리에 대비해 지난해 5∼6월께 회사 공용서버를 떼어내 자신의 집에 숨겨놓고 있었으며 직원 수십 명의 노트북과 휴대전화에서 이 부회장을 뜻하는 'JY'나 '합병', '미전실' 등 단어를 검색해 문건을 삭제했다는 것이 혐의 내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고수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다시 “A가 B에게 OO을 보냈다”를 “삼성 임원들이 보안직원들에게 승계구도와 관련된 증거들을 없애라고 했다”거나 “삼성 임원들이 회계사들에게 분식회계를 지시했다”로 바꿔보자. 이제 우리는 그러한 분식회계 지시나 증거 인멸 지시가 삼성임원들이나 회계사들 및 보안직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인식할 수 있고,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를 위해 대한민국과 박 전 대통령이 위법한 방법으로 협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에 대한 ‘평가’나 ‘태도’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과 증거인멸 시도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것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안 그래도 경제가 좋지 못한데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수사보고가 나오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삼성을 자꾸 건드리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쪽에 초점을 두는 언론도 있다.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2017년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4점을 받아 180개국 중 51위였다. 세계 행복 보고서의 행복지수 랭킹에서는 같은 해 156개국 중 56위였다고 한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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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