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로 시작된 양국의 극한 대치가 일단 숨고르기 국면으로 들어섰다. 일본 정부의 공세 수위 조절에 우리 정부도 보폭을 맞추면서다. 정부는 오는 28일 '백색국가 배제' 실제 시행까지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 카드를 내놓는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지난 7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수출 간소화 우대국) 제외 관련 시행세칙에서 추가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고, 같은 날 3대 수출규제 품목의 하나인 극자외선(EUV)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34일 만에 승인했다. 허가 기한이 최대 90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빠른 조치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대비해 일본의 조치가 '부당한 수출규제'가 아니라는 일종의 여론전 차원으로 풀이된다.
수출규제 후폭풍이 예상 외로 커지면서 일본 정부가 상황 분석과 재검토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익명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예상 이상으로 소동이 커졌다"며 '오산'이란 표현을 썼다. 한국 내 반일 감정에 불이 붙으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여행 자제 움직임이 확산됐고, 양국 간 각종 교류와 협력이 흔들리면서다.
한국 기업들의 '탈일본'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것도 일본 정부로선 부담이다. '큰 손'을 잃게 생긴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은 정부 방침과 다르게 한국·중국 공장의 생산량을 늘려 한국 기업에 우회 수출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우리 정부는 "근본적인 상황이 바뀐 것은 없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이미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대책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다음 스탠스를 예의주시하고 있고, 그에 따라서 저희도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WTO 제소와 우리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일본 제외 등 대응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우리에겐 광복절, 일본에는 종전기념일인 15일이 양국 관계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양국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광복절 메시지를 내놓고, 아베 신조 총리가 이에 화답하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면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 24일 만료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 학생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아베 정부 규탄 청소년 1000인 선언 발표'에 참석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