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고등학생까지 뛰어든 ‘주식판’

입력 : 2020-08-28 오전 6:00:00
코로나19로 기자들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만날 일은 웬만하면 전화통화로 끝내고 있으며 일하는 장소도 달라져 짬나는 시간에 이용하던 카페가 모바일 오피스가 됐다. 
 
이 얘길 하자는 건 아니고, 카페에 앉아 일하다 보면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일에 집중이 안 될 때도 그렇겠지만, 대화 주제가 내 관심사일 때는 특정 단어들이 고막을 때리게 마련이다. 요즘 유독 그런 일이 잦다. 물론 주식 얘기다.
 
며칠 전 카페에서 한창 일하는 중이었는데 옆자리에서 주식 얘기가 나왔다. 힐끗 봤더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한 명의 어깨에 커다란 문신이 없었다면 고등학교 1년, 2년생쯤이라고 생각했을 앳된 얼굴이었다. 
 
아무튼, 민소매의 남자가 마주앉은 두 친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요약하자면 주식을 사서 10만원 넘게 ‘먹었고’, 오토바이를 팔아서 더 살 거고, (유튜브 방송에서 봤는데) 누가 이 종목 오를 거라고 했다며 이렇게 좋은 걸(주식투자를) 왜 안하느냐 빨리 해라, 이런 내용이었다. 두 친구는 별 흥미가 없는 것 같다가도 중간중간 “그래?”와 같은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몇 시간 후에 만난 금융투자업계 종사자에게 이 얘길 했더니 요즘 중고등학생들도 주식투자를 많이 한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주식창만 들여다보는 학생들이 적지 않아서 수업 전에 휴대전화를 압수할 정도라는 세태도 전했다. 
 
사실 요즘은 카페나 식당에 갈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주식 얘길 듣는 편이라 언제 어느 곳에서나 주식종목, 대박주, “이건 비밀인데~”, “○○으로 2배 먹었다” 등등을 접해도 놀랍지 않았는데, 이 분이 들려준 요즘 학생들 얘기에는 충격 좀 먹었다.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존봉준’으로 불리는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오래 전부터 학생들에게 주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설파했다. 동감한다. 나 또한 오래 전부터 아이를 낳으면 주식투자로 경제공부, 세상공부를 시켜야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모가 뜻이 있어 주식으로 이끄는 것과, 미성년 학생이 스스로 주식 매매를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자발적으로 주식판에 뛰어든 학생의 투자 목적이 과연 경제공부, 세상공부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들에게 MTS는 화투판, 포커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식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전부 주식에 열광할 때 빠져나오라는 피터 린치의 ‘티파티 이론’을 내세워 주식을 팔라는 기사라도 써야 하나. 그러기엔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천문학적이라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 주저하게 된다. 그저 가슴 한켠에 경계심을 담아둔 채로 투자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주식계좌를 만들었을까? 부모를 졸랐을까? 담배 자판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처럼, 비대면 증권계좌 허용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 미성년자는 비대면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다만 올해 초까지 모 증권사에서는 미성년자도 비대면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니 그곳으로 몰렸는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성교육을 하는 대신 콘돔을 쥐어주는 게 효과적이라는데, 이제는 콘돔 역할을 할 주식교육이 필요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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