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머지포인트에 물렸다

입력 : 2021-08-20 오전 6:00:00
머지포인트에 물렸다. 소셜커머스 업체에서 10만원씩 세 번을 구매했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포인트가 3만원쯤 남아 있었다. 이미 받은 할인혜택이 잔액보다 커서 개인적으론 피해랄 게 없지만, 랜선 이웃들 중에는 수십만원씩 묶인 분들이 적지 않다. 
 
머지포인트를 알게 된 건 블로그 이웃을 통해서다. 20%나 되는 할인율이 눈에 꽂혔다. 처음 보는 지불수단이었지만 마침 회사 근처 와인숍에서 쓸 수 있다기에 매장에서 할인행사 중인 와인을 할인구매한 포인트로 구입, 정가보다 30% 이상 아낄 수 있었다. 
 
낯선 소비 방식에 거리낌이 없었던 건 앱 기반이라는 점만 다를 뿐 구둣방에서 각종 상품권을 싸게 구입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용하는 것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포인트 사용처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곳들이었던 이유가 크다. 동네 여러 음식점과 빵집에서도 사용이 가능했으나 편의점과 이마트로도 충분했다. 실제로 이마트에서 꺼내들었다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이마트가 허용한 월 한도액이 있는데 매달 중순쯤이면 한도가 다 차니까 머지포인트로 결제할 거라면 초순에 오라는 이마트 캐셔의 안내를 받았던 것. 이용자가 많다는 반증이었다. 뜨거웠던 여름 아이스크림 매장에서도 머지포인트로 결제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고백하자면 이때쯤 ‘이거 기사로 한번 써볼까’하는 생각도 했다. 재테크라는 것이 주식,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리는 것만큼이나 알뜰한 소비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실제로 썼다면 지금쯤 온갖 비난과 비판을 받았겠지만, “서울시민들은 재산세 등 세금 낼 때 신세계 상품권을 할인구매해 SSG머니로 바꿔 쓰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기사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접근법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결제수단이라 조심해야 했을까? 이름도 낯선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몇 년 만에 유니콘으로 성장했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 세상에서 소비자들에게 ‘처음 보는 결제수단’이 기피할 충분조건이 될까? 머지포인트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구독서비스를 내놓으며 온라인 경제를 키우는 마당에 할인율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폰지사기를 의심할 소비자가 몇이나 될까?
 
다 핑계라고 할 것이다. 20%씩이나 할인한다는 그 자체로 의심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지적은 필자처럼 모든 걸 일단 실눈 뜨고 의심해야 하는 사람에게나 할 말이지,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머지플러스를 보고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것이 아니라, 머지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매장과 브랜드, 기업을 보고 지갑을 연 것이다. 그래서 머지플러스에 문제소지가 있었다면 개인보다는 이들이 일차적으로 걸러내야 했다. 사용자 각자가 져야할 책임을 유통기업에게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는 훨씬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기업들이 걸려내지 못한 아쉬움을 전하는 것이다.
 
아니다. 이런 폐해를 막을 법안이 이미 논의되고 있는데 아직도 국회를 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면 시스템의 문제가 더 커 보인다. 가만 생각해보면 문제가 터지고 나서 “실은 논의 중이었다” 이런 사례가 꽤 많았다. 따지고 보면 기업들도 각 매장의 피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을 것이다. 
 
이런 일이 또 다른 형태로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온라인 선불결제는 일상이 되어 가는데 여태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것도 어이없다. 이번에 머지플러스에 급제동을 건 금융당국도 관할기관은 아니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국회에서 쿨쿨 잠자고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기술과 기업만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창경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