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재판 거래’ 의혹…흔들리는 사법부 신뢰

‘대법원의 꽃’ 전합 불공정 시비로 법원 내부 뒤숭숭
떨어진 대법관 위신에 전·현직 법관들 허탈감
"권 전 대법관 판결 연계 이익 받았다면 법원 문 닫아야"

입력 : 2021-10-1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로 큰 파동을 겪었던 법원이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 제기로 또 다시 내홍을 겪을 조짐이다. 특히 사법부 최고의결기관으로서 ‘대법원의 꽃’이라 불리는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신뢰도마저 균열이 생기면서 이는 사법부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사법개혁 추진 중 허탈감…“당혹스럽다”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전고법 국정감사에서는 ‘대장동 특혜 의혹’의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 고문을 맡은 권순일 전 대법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권은 권 전 대법관이 퇴직 후 취업제한심사 없이 화천대유 고문으로 취임해 1년여 간 매달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아간 사실을 지목했다.
 
야당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권 전 대법관과의 ‘재판 거래’ 의혹을 정조준했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 취지로 결정하는데 권 전 대법관이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법원 내부가 술렁이는 가운데 이균용 대전고법원장은 국감에서 “권 전 대법관이 사법부 청렴성을 훼손했다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 질문에 “당혹스럽다”고 답했다. 이어 “법관은 공정해야 하고 또 공정하게 보여야 하는데 국민께서 (권 전 대법관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법원행정처), 사법연수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1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도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권 전 대법관 논란으로) 국민이 어떻게 법원을 신뢰하겠느냐”고 지적하자 “(권순일) 대법관 문제 관련 아직 사실 관계가 규명되고 있는 과정이라 어떤 언급을 하기에 적절치 않지만, 저나 법관들도 이 상황 자체에 대한 당혹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처장은 이 지사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후 권 전 대법관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수차례 만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대해서도 “이해관계인이라면 만남이 부적절하다”고 답변했다.
 
“권순일 외 대법원장 약속받은 대법관 있다”
 
일각에선 ‘재판 거래’ 의혹 관련 권순일 전 대법관 외 대법원장직을 약속받은 또 다른 대법관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법사위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대장동 게이트의 주범격인 김만배가 평소 지인들에게 ‘이재명 지사 무죄 판결에 권순일도 역할을 했으나 그보다 더 혁혁한 역할을 한 대법관이 있다.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그 사람이 대법원장이 될 것이다. 이재명도 그 사람에 대해 (권 전 대법관 보다) 더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늘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권 전 대법관 외 또 다른 대법관이 이 지사 무죄 판결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권 의원은 다만 해당 대법관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2021년 국정감사가 시작된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법원행정처), 사법연수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공개한 화천대유의 대주주인 김만배 씨의 권순일 전 대법관 방문 기록. 사진/뉴시스(국회사진기자단)
 
이 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 때 ‘친형 강제입원 사건’ 관련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로 무죄를 확정 받았다. 

법원 등에 따르면 이 지사 사건은 2019년 10월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에 배당됐다. 그로부터 8개월간 결론이 나지 않자 지난해 6월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13명의 대법관 중 김선수 대법관은 변호사 시절 이 지사의 다른 사건을 변호한 적이 있어 회피 신청을 냈고, 12명이 전합 심리에 참여했다. 
 
당시 권순일·김재형·박정화·민유숙·노정희·김상환 6명의 대법관이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죄 취지 의견을 내면서 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노태악 5명의 대법관의 유죄 판단은 소수 의견이 됐다.

5대5로 유·무죄 의견이 반반으로 나뉜 상황에 권 전 대법관이 무죄 쪽에 서면서 무죄가 다수가 됐고, 김명수 대법원장도 관행상 다수 의견을 따라 7대5 무죄 취지 파기환송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이 판례는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을 살렸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제2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된 오세훈 서울시장을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판단의 근거로 이 지사 판례를 들었다. 
 
반면 2015년 이 사건들과 유사한 박경철 익산시장의 허위사실공표 혐의 사건에선 대법원 소부의 주심을 맡은 권 전 대법관이 허위사실 공표 사실을 인정해 당선무효형을 확정했다. 이 판결로 박 시장은 시장직을 잃었다.
 
권 전 대법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연루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대법관으로 임명돼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던 권 전 대법관이 지난해 이 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 취지 의견을 낸 것을 두고 법조인들 사이에선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권 전 대법관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언급된 인물이었으나 초기 단계까지만 개입됐단 이유로 탄핵 대상에서 비껴갔다. 그 덕에 권 전 대법관은 이 지사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 의견을 낸 뒤 6년 임기를 꽉 채워 퇴임했다. 퇴임사는 없었다.

그로부터 2개월만인 지난해 11월 그는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화천대유 고문으로 합류했다. 
 
권순일 대법관이 2014년 9월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11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7월 대법원 전합 판결 이전) 이 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해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유죄 의견의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권 전 대법관을 포함한 일부 대법관의 요구로 ‘무죄 취지’의 연구보고서를 새롭게 작성했다”며 “만약 권 전 대법관이 판결과 연계해 (화천대유로부터) 이익을 수수했다면 사법부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재명 지사 사건이) 소부에서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합에서 (의견이 반반 갈린 상황) 마지막에 권 전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낸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현직 법관들의 이 같은 문제의식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관과 같은 고위 공직자의 경우 퇴임 후 자신이 심리했던 사건 관련 당사자 또는 관계자를 대리하거나 자문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법조윤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일에는 전국 각 법원의 법관 대표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권 전 대법관 논란 관련 ‘퇴직법관의 취업제한 문제’를 차후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권 전 대법관 사안을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퇴직 법관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할 지 조만간 결정할 계획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오는 12월 열릴 예정이다.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강당에서 열린 선관위원장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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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