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계절출판사 40주년이 빛나는 이유

입력 : 2022-05-16 오전 6:00:00
지금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에서는 ‘책·사람·자연’이라는 주제로 사계절출판사 40주년 기념 전시회가 한창이다. 4월 26일부터 6월 6일까지 이어지는 제법 긴 기간의 이 전시회에서는 출판사의 역사와 주요 도서에 얽힌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내고 독자 참여형 행사들을 마련해 출판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김환영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원화전, 한국 최초의 청소년문학상인 사계절문학상 제정 20주년 북토크와 어린이 대상 이벤트 프로그램들까지 다채롭다. 규모가 제법 큰 전시장을 꾸밀 수 있는 탄탄한 콘텐츠와 자신감이 없으면 기획하기 어려운 전시회인데, 탄탄한 구성으로 시각적인 완성도와 재미 요소까지 갖췄다. 
 
이 출판사는 창립 40주년 기획 출판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이라는 책도 펴냈다. 강맑실 대표가 전국 각지 23개 서점의 모습을 그려서 엮은 책이다. 지난해 펴낸 자서 『막내의 뜰』을 펴낸 후 저자 초청 강연회를 개최했던 전국 서점지기들이 풀어놓은 서점 이야기에 출판사 대표가 정감이 넘치는 그림을 붙여 편집했다. 지역에서 문화를 지키는 동네책방들이 출판사와 독자의 든든한 벗임을 드러낸, 이름값 하는 출판사다운 인사법이다.       
 
사계절출판사는 200만 부 이상 판매된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전3권, 1993), 밀리언셀러에 등극하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해 최다 관객을 모은 『마당을 나온 암탉』(2000),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등 베스트셀러의 산실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출판사 출간 목록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의미와 가치가 있지만 시장에서 실패한 책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사계절출판사의 40주년이 특별하게 주목받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다. 군사정권 시절이던 1982년에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로 창업했지만 줄줄이 판매금지 처분을 받은 책들을 펴낸 데 이어, 소문으로만 떠돌던 월북작가 벽초 홍명희의 전설적인 장편소설 『임꺽정』(전9권, 1985)을 펴내며 고초를 겪었다. 남북 관계의 경색 속에서 북한에 사는 벽초의 후손과 정식 출판 계약을 맺으며 우리 문학사의 자양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저본으로 10년 만에 만들어진 텔레비전 드라마 ‘임꺽정’이 1996년에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출판사는 매년 홍명희문학제를 개최한다.    
 
둘째는 어린이 청소년 출판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1992년에 『교실밖 국어여행』 등 ‘교실밖’ 시리즈를 중심으로 청소년 도서를 출간하기 시작해 국내 최초의 청소년소설 공모상을 제정하고(2002), 청소년문학 시리즈의 대명사인 ‘1318문고’가 131종을 돌파했다. 2020년에는 요절한 천재 청소년문학 작가를 기리는 박지리문학상 및 사계절어린이문학상, 사계절그림책상 등 3개의 상을 한꺼번에 제정하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21년에는 아동문고 출간이 100종을 돌파했다.      
 
셋째는 부단히 출판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것이다. 인물 이야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우리 시대의 인물 이야기’(1994년), 역사적 사실을 일간신문처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든 한국사 시리즈 ‘역사신문’(전6권)과 ‘세계사신문’(전3권), 책 한 권 만드는 데 집 한 채 값이 들었다는 ‘한국생활사박물관’(전12권) 등 역사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아직도 출판계에 회자된다.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한 『울기엔 좀 애매한』(2010)은 50년 역사의 한국출판문화상 최초의 만화책 수상 기록을 세웠다.     
 
사람들의 독서율이 하락하고 출판이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는 현실의 일부만을 반영하는 부정적인 논리이자 패자의 언어다. 읽는 사람은 여전히 많이 읽는다. 출판 사업도 새로운 기획력으로 무장하고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책은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정신적 지지대다. 시대의 금기에 도전하며, 책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분야마다 독자들에게 신선한 정신적 자양을 제공하는 출판사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출판평론가(bookclub2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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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