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포항서 자란 ‘기업시민’ 포스코의 고민

산업의 쌀 키우는 ‘제철보국’ 이념으로 창업
나라에 은혜 갚은 뒤엔 지속가능 경영 추구
포항선 지역사회 희생과 은혜에 방점
서울에 몰린 인재 확보에 고심…ESG 영향도

입력 : 2022-08-10 오후 4:03:44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포스코가 민영화 20년을 맞아 ‘기업시민’ 역할에 몰두하고 있지만 과거 ‘제철보국’을 내걸었던 국민기업 정체성이 지역 상생의 부담으로 남아있다.
 
1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올해로 기업시민 헌장 선포 3주년을 맞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18년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선포하고 이듬해 기업시민헌장을 냈다. 기업시민은 ‘존경받는 100년 기업으로 지속 성장한다’는 문화 정체성이다. 철강과 국가를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사진=이범종 기자)
 
포스코는 창업이념은 ‘제철보국’이었다. 지난 1968년 포항종합제철 설립 당시 일본에서 받은 대일청구자금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회사의 임무는 양질의 철로 국가 산업화 기반을 세워 은혜를 갚는 일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조국을 부강하게 만들려면 ‘산업의 쌀’인 철강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민영화와 함께 대일청구권 상환을 끝냈다. 2002년 사명을 기존 영문 이름인 포스코로 바꿨다. 그로부터 16년 뒤 기업시민 선포와 헌장 발표, 그에 따른 ESG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이로써 포스코는 국가와 민족에 은혜 갚는 회사에서 자연과 구성원,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회사로 거듭났다. 포스코는 ‘포스코 50년사’에서 “제철보국에는 이미 기업시민의 의미가 담겨있었고 기업시민을 지향하는 포스코의 저변에는 여전히 제철보국이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위드(with) 포스코'로 불리는 기업시민 5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린 위드 포스코(Green With POSCO)는 탄소중립 실천, 투게더 위드 포스코(Together With POSCO)는 협력·공급사, 고객사 동반성장을 가리킨다. 챌린지 위드 포스코(Challenge With POSCO)는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와 신성장 산업 육성, 라이프 위드 포스코(Life With POSCO)는 저출산·취업 등 사회문제 해결과 직원의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지역사회 명소화 사업 등 지역과 상생을 위한 모델을 제시하는 커뮤니티 위드 포스코(Community With POSCO)도 있다.
 
지역 상생은 포스코의 지주사 전환 이후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지주사 전환 발표 당시, 포항시는 포스코의 뿌리인 포항에 지주사 본사를 두어야 한다며 반발했다. 포스코와 포항시는 2023년 3월까지 지주사 포스코홀딩스 서울 본사를 포항에 옮기고 미래기술연구원 본원도 포항에 짓는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최근 포항시민 150명이 상경 투쟁을 한 데 이어 18일 300명 규모로 후속 집회를 예고하는 등 약속 이행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합의서 내 ‘포스코 지주회사 소재지는 이사회 및 주주설득과 의견수렴을 통해’ 이전을 추진한다는 내용에 주목한다. 포스코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점도 불안감을 키운다는 것이 지역 내 여론이다.
 
포항지역에선 포스코의 기존 정체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포스코 지주사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8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 집회 당시 “제철보국 정신을 훼손하며 이윤만 쫓는다”며 지역과 국가에 대한 ‘은혜’를 강조했다. 주요 시설을 세울 때 시민들이 상생을 위해 적극 동의해 줬다는 취지로도 이야기 했다.
 
포스코 지주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 지주사 이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들은 합의서 서명란에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빠지고 김학동 부회장과 전중선 POSCO홀딩스(005490) 사장만 포함된 점도 문제삼았다.
 
포스코는 세계 무대 경영을 위한 효율성 추구와 지역 상생 사이에서 고민이 깊다. 당초 포스코는 수소와 이차전지 등 다양한 사업으로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해 지주사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를 각각 서울과 수도권에 세우려 했다. 특히 연구원 수도원 설립은 국내외 우수 과학자 영입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었다.
 
지주사 이전 문제는 향후 사회책임(S) 부문 평가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관계자는 “지역 사회 주민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아예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내년 합의 이행 여부가) 어떻게 되는지 경과를 지켜보고 어떻게 평가에 반영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사내 성윤리위반 문제도 기업시민 이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포스코에 남녀고용평등법 12조(직장 내 성희롱 금지) 위반으로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피해자 2차 가해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자를 사법처리 할 방침이다.
 
KCGS는 지난달 3분기 ESG 등급 조정에서 포스코홀딩스의 S 부문 등급을 A에서 B+로 떨어뜨렸다. 지난 4월 2분기 조정 때는 A+에서 A로 낮췄다. 이때는 산업재해 반복이 이유였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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