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책임의 공백

입력 : 2022-11-04 오전 6:00:00
더 많은 희생자를 살릴 수 있었다. ‘만약’이란 가정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지만, 이번만큼은 그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핼러윈에 이태원으로 사람이 많이 몰릴 거라는 예상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예측이다. 기존에도 핼러윈 때마다 “앞으로 가고 싶지 않아도 몸이 앞으로 가고 있다”, “몸이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걸 체험할 수 있다” 등의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시즌이고, 장소였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억눌려 왔던 청춘들이 3년 만에 다시 나올 기회다. 상인들도 그간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마음에 달콤한 마케팅으로 공략에 나섰다. 최소한 2019년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이 올 거라는 예측까지 어렵게 도달할 수 있을 터. 많은 사람이 몰리면 사건·사고는 뒤따르기 마련이다.
 
당일 저녁에 접어들면서 이미 징조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후 6시부터 접수된 11건의 112 신고가 그 증거다. 이미 참사 4시간 전부터 접수된 신고 내용엔 ‘압사’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신고 빈도 수는 오후 10시가 될수록 점점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빅브라더'가 CCTV란 이름으로 이미 자리잡은 시대다. 이태원에도 곳곳마다 CCTV가 설치됐고, 경찰과 지자체는 관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볼 수 있다. 인파가 급격하게 몰리는 수치는 실시간으로도 집계된다. 
 
참사가 벌어진 후 일대는 아수라장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배치한 현장 안내요원이나 경찰은 턱없이 부족했고 또 보이지 않았다. 구급차가 왔지만, 현장 통제가 되지 않으니 인파는 축제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던 재난 문자는 참사 1시간40분만에야 발송됐다. 이미 심정지로 수십명이 유명을 달리한 후다. 현장을 진두지휘하거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경찰 책임자,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지자체와 경찰이 사전에 안내 요원이나 경찰을 더 배치했더라면, 당일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했더라면, 직후라도 재난문자를 바로 발송하고 인파를 분리해 곧바로 구조했다면 우리는 조금은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을 지 모른다.
 
날이 밝은 후 우리는 희생자만 150명이 넘는 참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 명, 한 명 희생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냥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청춘들이 희생됐다. 수학여행 간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대학에선 코로나를 겪더니 이젠 서울 한복판에서 또다시 크나큰 아픔을 겪었다.
 
참사 이후 마치 정부는 트집 잡을 구실을 만들지 않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허울뿐인 애도와 무의미한 유감만을 남발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한 책임’을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무한은 마치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을 것처럼 들린다.
 
모두가 ‘무한 책임’을 말하다보니 정말로 책임지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다. 권력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라지만, 우리 앞에 놓인 책임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책임은 공백을 허용하나 보다.
 
우리 사회의 안전은 세월호 이후 얼마나 나아갔을까. 지금이라도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번 참사의 책임을 질 사람들을 가려내고, 다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참사로 상처를 입은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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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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