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입력 : 2022-11-29 오전 6:00:00
이태원 참사 한 달째다. 애도기간이 끝나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힘을 내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부채감에 다시 휩싸이기도 한다.
 
연일 수사가 이어지지만 아직도 참사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외신기자에게 농담을 건네던 총리나 설화로 공분케 한 장관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간접적인 사과만 한 채 도어스테핑까지 중단한 대통령부터 ‘마음의 책임’을 느낀다는 단체장까지 모두가 유체이탈로 시간만 죽이고 있다.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여준 태도는 달랐다. 적어도 참사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요상한 단어들로 대중을 현혹하지도 않았다. 대신 잘못을 인정했다.
 
오 시장의 이런 태도는 일관된 듯 보인다. 참사 사흘 후 아무도 참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그리고 이날 새벽 추가된 희생자 가족을 만난 얘기를 전하며 좀처럼 보이지 않던 눈물을 흘리고 ‘깊은 사과’와 ‘무한 책임’을 얘기했다.
 
얼마 전 시의회 시정질문에서 한 시의원이 ‘핼러윈에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 왜 사전에 아무 대비를 하지 못했는가’라고 물었을 때도 인파가 몰릴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그의 말대로 20~30대들이 십수 년 전부터 이태원 등지에서 축제 문화처럼 핼러윈을 즐겼지만, 이미 60줄에 들어선 오 시장은 이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소방재난본부나 안전총괄실에 질책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오 시장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예측의 실패'를 꼽았다. 이어 “서울시, 행정안전부, 경찰, 소방이 반성할 부분”이라며 서울시의 책임을 가장 먼저 거론했다.
 
물론 서울시의 수장인 오 시장이 이번 참사의 책임자 중 하나임은 재난안전법까지 가져오지 않아도 충분하다. 핼러윈에 매년 수 만명이 몰리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재난에 대한 대비·대응은 자치단체장이 해야 할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법적 책임 여부는 수사 결과에 따라 더해질 수 있다.
 
그래도 다른 책임자들이 제도 핑계를 대고, 정치적 수사에 기대어 사안을 비켜가기만 할 때 적어도 참사를 직시하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과 아랫사람을 문책하거나 참모진을 교체하는 등 '꼬리 자르기'로 회피하지 않는 모습은 평가받을 만 하다.
 
참사는 상처를 남긴다. 전문가들은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안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사안을 직시한다는 것은 실체적 사실과 그 인과관계, 과실 여부 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와 국회, 행안부 등도 대책을 내놓았지만 설득력에선 차이를 보인다. 오 시장은 휘하에 있는 소방과 자치경찰을 재난 대응에 활용하는 데 미진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불법건축물 이행강제금 인상, 과밀지역 안전대책 수립, 군중 인파관리 시스템 도입, 112·119 통합 관리, 실시간 CCTV 공유 및 관리 개선 모두 오 시장 입에서 참사 이후 나온 해법들이다. 도어스테핑도 중요하고 여야 주도권 싸움도 중요하지만 정치권의 셈법만으론 상처입은 이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
 
사안을 직시했으면 그 다음은 앞을 향해 한 발 내디뎌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발 딛을 바닥이 다시 무너지지 않을거란 믿음, 신뢰다. 월드컵 응원전 재개 여부를 얘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이유는 그 신뢰가 아직은 단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루과이 전을 통해 많은 인파가 몰려도 대비만 잘하면, 여러 기관이 각자의 역할만 맡아도 아무 사고 없이 끝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생긴 작은 믿음이 쌓이고 쌓인다면 언젠가는 다시 핼러윈이 찾아왔을 때 이태원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박용준 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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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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